제시문
문학은 개연성을 가진 사건, 즉 세상의 이치에 따라 일어날 법한 일을 그리지만, 역사는 우연적이고 일회적으로 일어난 사실을 다룬다. 따라서 문학이 역사보다 더 보편적인 진실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문학의 허구성에 대한 비판에 맞서 시적 진실을 옹호하는 고전적 관점이다. 그럼에도 작가들은 오랫동안 역사가들 앞에서 ㉠++자격지심++을 느끼곤 했었던 것 같다. 실제 일어난 사실과 들어맞지 않는 것은 진실일 수 없다는 통념이 여전했기 때문이다. 유럽의 초기 근대소설 작가들이 자기들의 작품을 실화나 역사라고 주장하곤 했던 사실은 이 통념이 얼마나 뿌리 깊었는지를 잘 보여 준다.
20세기에 들어와 시적 진실의 개념은 실증주의 추종자들에게 다시 의심을 받았다. 이들은 명제의 진위는 논리 법칙에 의한 증명 또는 경험적 검증으로 판단될 수 있으며, 판단 가능성을 가지지 못한 명제는 의미가 없다고 보았다. 이 입장에서 문학적 진술은 대개 거짓이거나 무의미한 진술에 불과하다. 이를테면 이육사의 「절정」에 나오는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는 같을 수 없는 것을 같다고 우기는 거짓말이거나, 보여 주지도 못하면서 그저 있다고 우겨대는 ㉡++헛소리++에 가깝다.
리처즈는 이에 맞서 시적 진실을 변호했다. 그는 언어의 '과학적 사용'과 '정서적 사용'을 구분한다. 이때 과학적으로 사용된 언어의 진실성은 증명이나 검증을 통해 판정되지만, 정서적으로 사용된 언어의 진실성은 수용자의 주관적 정서와 태도에 미치는 효과에 의해 결정된다. 리처즈는 시의 언어는 정서적 사용의 언어이며, 시의 진술은 '우리의 충동과 태도를 방출하거나 조직함에 있어 그 효과에 의해 정당화되는 말의 형태'로서의 의사(疑似) 진술이라고 말한다.
리처즈의 견해는 시적 진실을 주관적 효과의 문제로 환원하는 한계가 있지만, 문학 언어의 특수성에 주목하여 시적 진실에 대한 ㉢++알리바이++를 제공한다. 실제로 서양의 고전 운문에서 통용되었던 시적 허용은 일반적 언어관습이나 사실에서 일탈할 수 있는 창조적 자유를 작가에게 부여했다. 시적 허용은 운율과 같은 특정한 미적 효과를 위해 규범적 어법으로부터의 일탈을 허용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은 보다 넓게 역사적·지리적 사실에도 적용되었다. 작가는 악의 없는 거짓말에 대한 일종의 ㉣++면책특권++을 누렸던 셈이다.
신비평 이론가들이 시 언어의 근본적 속성으로 강조하는 역설 또한 문학 언어의 진실성이 논리적 언어와는 다른 방식으로 인정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역설은 표면적으로 모순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진실을 새롭게 드러내는 진술이다. 이를테면 김소월의 「진달래꽃」의 화자가 떠나는 님에게 자신이 뿌린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라고 말하는 것은 얼핏 모순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별의 순간에 종종 느끼는 원망과 자책, 미련과 체념의 복합된 감정은 바로 이런 역설을 통해서만 드러나기도 한다. 우리의 복잡다단한 경험과 거기서 말미암은 인식과 감정이 때때로 논리적 규범을 넘어선 역설을 통해서만 드러날 수 있음은 시적 진실의 또 다른 가능성을 잘 보여 준다.
그렇다고 사실과의 불일치나 논리적 모순이 늘 시적 진실로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작품 전체의 맥락에서 이런 진술들이 무리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절정」에서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가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온 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위에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이 선 화자의 절박한 상황이 이미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시적 진실은 일종의 맥락적 진실이며, 문학적 진술의 진실성은 작품 전체의 맥락에서 가지는 일관성과 설득력에 의해 판단된다. 이렇게 보면 순전한 상상이나 환상에 대해서도 그 진실성을 이야기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이러한 관점은 다시금 시적 진실에 대한 고전적 관점을 떠올리게 한다. 맥락적 진실이 세상의 이치와 곧바로 이어지는지 쉽게 단언할 수 없지만, 두 관점이 각각 추려내는 좋은 작품의 목록은 상당히 큰 ㉤++교집합++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 안의 작품들은 최소한 작품이 제시하는 허구적인 세계의 내적 정합성이라는 맥락 아래 승인되는 맥락적 진실을 획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