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문
사법심사는 다수주의의 예외로 간주되기도 한다. 민주적 절차로 선출된 의회나 행정부의 결정이 합헌 여부를 기준으로 무효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법심사의 주체가 임명직이라는 점에서 정통성 문제가 대두된다. 반대로 사법심사는 민주주의의 내재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고육지책이라는 옹호론도 있다. 사회적 약자에 해당하는 소수자 집단은 다수결 논리에 의해 형성되거나 해체되는 의회나 행정부로부터 보호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위의 논의들은 사법심사의 정치적 독립성을 전제하지만, 현실 정치에서의 완전한 독립은 늘 의심받는다. 이에 로버트 달은 미국의 연방대법원이 반다수주의를 추구하는 사법심사 기구가 아니라 대통령, 의회와 함께 지배 연합의 필수불가결한 부분으로 작동한다고 분석했다. 의회의 힘 있는 입법 다수가 최근에 제정한 법률을 연방대법원이 뒤집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선출직 의원들은 재선 때문에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의회 내 입법 다수는 전국 여론의 축소판이어서, 이에 영향을 받는 사법심사는 원래 취지와 달리 소수의 이익을 보호하지 못하는 다수주의적 난제에 직면한다. 사법심사가 반다수주의적 난제를 떠안았다는 기존의 견해를 뒤집은 달의 이런 주장은 여론조사 기법의 발달로 대중의 선호가 사법적 판단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되면서 설득력이 커졌다. 그중에는 사법심사 결과와 여론조사 결과가 60% 이상 일치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즉 정책 영역에 따라 일치도의 차이는 있지만, 연방대법원 역시 대체로 의회나 대통령처럼 여론에 반응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사법심사의 결과가 여론에 영향을 미치는 방향도 상정할 수 있다. 즉, 사법심사 결정 후 그 결정에 찬성하는 여론이 증가 혹은 감소할 수도 있고, 여론이 양분되거나 사법심사 결정에도 불구하고 여론에 변동이 없는 경우도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 정치를 배경으로 한 기존 연구는 이 상황을 크게 네 가지 모델로 구분해 설명한다.
우선 '긍정적 반응 모델'이다. 이 모델은 어떤 사안에 대해 반대 의견을 가졌던 사람들도 연방대법원의 결정이 나온 후에는 기존 의견을 수정해 그 결정을 수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현상에 주목한다. 이때 찬반 의견의 변경은 그 사안에 대해 대중의 관여도가 비교적 낮아 발생한 것으로 설명된다. 대중은 대체로 연방대법원의 전문성과 공정성을 신뢰하고, 그 결과 연방대법원의 결정은 미국 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수용된다. 자신과 특별한 이해관계가 없는 한, 대중은 연방대법원의 결정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여론을 형성하게 되므로 이 모델은 많은 사례를 잘 설명할 수 있다고 평가된다.
'반발 모델'은 사법심사 결과에 불복하는 그룹들이 반대 의사를 적극 표출하고 이것이 전체 여론으로 확산하는 현상에 주목한다. 연방대법원이 동성혼을 합헌으로 결정하자 동성혼에 대한 지지는 물론 성적 소수자를 포용하는 여론이 도리어 감소했음을 밝혀낸 연구가 그 사례이다. 한편, 사법심사 결과에 대한 반발은 시간 경과에 따라 줄어드는 경우가 있어 이 모델은 내구성이 약하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일시적 반발이 잠잠해지면 사법심사의 결과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여론 변화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양극화 모델'은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던 사안들이 사법심사를 계기로 본격적인 쟁점으로 전환되어 대중의 찬반 여론이 극명하게 갈리는 현상에 주목한다. 낙태 이슈에 대한 사법심사 결정이 오히려 미국 사회의 갈등을 증폭한 것이 그 예이다. 실제로 사법심사 결정은 특정 집단 내에서 여론의 강도를 높이는 경우가 있다. 특정 사안에 관심이 없거나 태도가 모호했던 대중이 사법심사 결정 이후 양극단에 집결하고 응집도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한 낙태 이슈는 사법심사 과정에서 대중에게 전달되는 관련 정보를 증가시켰고 이 정보에 노출된 대중은 기존의 모호한 태도를 버리고 특정 입장에 집결하고 세력화하였다.
마지막으로 '무반응 모델'은 사법심사 결정 후에도 기존의 여론 지형도가 지속되는 무반응 현상에 주목한다. 사법심사가 의회의 결정을 지지하는 경우, 언론의 주목도나 여론의 관심도는 대체로 낮다. 주로 폭넓은 사회적 합의가 있었거나 대중의 관심도가 낮았던 특정 사안이 의회에서 입법화되고 사법심사가 이를 추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무반응 모델'은 미국의 정치 현실을 폭넓게 설명할 수 있는 모델로 평가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