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문
공리주의에서 도덕적으로 옳은 것은 공리를 극대화하는 결과를 산출하는 것이다. 반인권적인 행위나 제도라도 결과적으로 더 많은 공리를 산출한다면, 공리주의는 그것을 지지해야 한다. 가령 병원에 건강 검진을 받으러 온 한 사람을 죽여 다섯 명의 환자에게 장기를 이식하는 경우, 더 많은 공리는 산출되겠지만 한 명의 생명이 갖는 권리를 침해하게 된다.
도덕적 권리들이 존재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전제하는 피시킨은 이 권리들을 인정하지 않는 윤리 이론은 거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엇이 공리를 극대화하는 결과를 낳을 것인가'는 경험적인 문제이므로, 권리에 적대적인 행위가 권리를 존중하는 것보다 더 많은 공리를 산출한다는 이유로 지지되는 공리주의는 권리의 확실한 토대를 제공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위의 행위가 허용되면 사람들이 공포를 느끼고 의료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등 나쁜 결과가 초래될 것이므로, 공리주의자도 그 행위를 반대할 것이다. 그러나 피시킨은, 무작위 추첨에 의한 반자의적 장기 기증 시스템에서는 사람들이 강제 기증자가 될 위험에 대한 공포보다 자신들도 수혜자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더 크다면 공리주의자는 공리 극대화의 한 방법으로 그 시스템을 승인할 것이라고 비판한다.
공리주의는 '권리의 규범적 힘'을 인정할 수 없기에 권리를 수용하기 어렵다고 라이언스는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내가 어떤 것을 할 권리를 가진다는 사실은 타인의 간섭에 반대하는 근거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권리 침해를 옹호하는 논변이 넘어야 하는 '논증의 문턱'을 제공한다. 그런데 공리주의는 행위의 도덕적 평가에서 일관되게 공리의 극대화를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권리의 규범적 힘을 인정할 수 없다.
한편, 반공리주의 논변에 맞서 브란트는 공리주의와 권리 사이의 부정합성은 단지 행위 공리주의에만 있을 뿐, 규칙 공리주의에는 없다고 주장한다. 개별 행위의 공리를 계산하는 행위 공리주의와 달리, 규칙 공리주의는 한 사회의 도덕률은 그것을 채택하지 않았을 때보다 채택했을 때 더 큰 공리를 산출하는 경우에만 옳으며, 어떤 개별 행위는 그 도덕률에 의해 정당화될 때 도덕적으로 옳다고 본다. 이때 도덕률 위반 행위가 공리를 증가시키더라도 그 도덕률은 준수되어야 한다. 이처럼 브란트는 규칙 공리주의가 권리의 규범적 힘을 수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라이언스는 규칙 공리주의도 권리들의 규범적 힘을 수용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공리주의에서는 공리에 대한 위협 없이 규칙을 위반하는 것이 가능하기에, 공리주의적 정당화는 공리주의자에게 규칙 유지의 이유를 제공할 수는 있어도 그 규칙을 준수해야 할 이유는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헤어는 공리주의와 권리의 도덕적 힘 사이의 부정합성은 '직관적 수준'과 '비판적 수준'으로 이루어진 자신의 두 수준 공리주의 이론을 따를 때 해소된다고 주장한다. 직관적 수준의 사유란 우리가 이미 주어진 것으로 간주하고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마음의 습관이나 원리 등을 개별적 사안에 적용할 때의 사유로서, 규칙 공리주의적으로 사유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에 견줘 비판적 수준의 사유는 행위 공리주의적으로 사유하는 것이다. 헤어는 직관적 사유를 이끄는 간단하고 일반적인 도덕 원리는 그것을 위반했을 때 죄의식이나 회한 같은 도덕적 감정을 수반한다고 본다. 이는 규칙을 과거의 경험에서 일반화한 일종의 '대략의 규칙'으로 보는 행위 공리주의의 생각과 다르다. 헤어에 의하면 권리는 일반적 도덕 원리의 일종이다. 직관적 사유가 다룰 수 없는 특수한 상황에서는 비판적 사유가 적용될 것이다. 그 결과, 권리 침해가 최적의 행위라고 결론이 난다면, 일관된 공리주의자의 입장에서는 권리의 침해가 도덕적으로 옳다. 그러나 여기서 헤어는 인간의 오류 가능성과 한계를 언급하면서, 신중한 공리주의자는 직관을 저버리기보다는 따르는 것이 최선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여길 것이라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