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문
보조생식술의 발전에 따라 난임 부부도 자기 생식세포를 이용한 체외수정으로 배아를 생성한 뒤 이를 모체에 이식하여 임신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발전은 시술 뒤에 남은 배아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윤리적 논란도 유발하였다. 잔여 배아를 예외 없이 폐기해야 한다는 견해와, 난치병 연구를 위해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견해가 맞서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독일에서는 배아보호법을 제정하였다. 이 법은 대다수 국가의 법령들처럼 임신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배아의 생성을 애초에 불허하고 있지만, 다른 나라의 입법례와는 달리 가급적 잔여 배아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시각을 반영한 ㉠++엄격한 기준++을 규정하여 배아 생성자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한다. 이에 따르면 1회의 시술 주기 내에 난자를 3개까지만 수정시킬 수 있고, 같은 시술 주기 내에 배아를 3개까지만 이식할 수 있다. 게다가 1회의 시술 주기 내에 이식할 배아의 수보다 많이 난자를 수정시켜서는 안 되고, 이식 후 배아의 온전한 착상 전에 그것을 채취해도 안 된다.
임신 성공률을 높이려면 가급적 많은 배아를 확보해야 하는 까닭에 잔여 배아가 생긴다. 그런데도 독일 법은 결국 한 번의 시술로 이식할 만큼만 수정하게 하고, 수정 후에는 남김없이 이식하게 하며, 심지어 배아를 회수할 목적으로 착상을 방해할 가능성마저 없애고 있다. 배아 보존 자체는 금지하지 않지만 보존될 배아가 애초에 거의 생기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배아보호법으로 인해 오히려 배아가 죽게 되는 역설적 상황이 초래되었다. 이 상황은 배아를 이용한 체외수정 시술의 특수성에서 비롯된다. 체외수정 시술을 위해서는 가장 건강한 배아 하나만을 골라 이식하는 '선택적 단일 배아 이식', 몇 개의 배아를 동시에 이식한 뒤 살아남은 배아를 성장시키는 '다배아 이식' 등의 방법이 사용된다. 임신 확률을 높이려면 배아의 건강 상태, 산모의 나이, 다태아 출산의 위험성 등에 비추어 가장 적합한 시술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이 법을 따르면 선택적 단일 배아 이식의 방식을 취하기가 어렵게 된다.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 배아에 모두 결함이 있어 불가피하게 배제될 경우가 아니라면, 충분히 건강한 한두 개의 배아를 다음 시술 시기를 위해 남겨 두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모든 배아를 일단 착상시킨 후 가장 건강한 하나만을 남기고 나머지 한두 개는 모체에서 제거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그래서 법제 개선을 촉구하는 독일학술원의 성명에서는 잔여 배아 보존이 가능하게 하고 배아 생성자가 그 기간을 결정하도록 하자고 제안하였다.
한국 법에서도 출산을 목적으로 할 때만 생식세포를 제공하여 배아를 생성할 수 있다. 일단 배아가 생성되면, 이식 횟수의 결정, 배아의 보존 여부, 난치병 연구를 위한 사용 여부 등에 대해 배아 생성자에게 의사 결정을 맡긴다. 다만 배아의 보존 기간은 5년 이내로만 정할 수 있고, 이 기간이 지나면 잔여 배아는 배아 생성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원칙적으로 폐기해야 한다. 한편, 배아 생성자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는 것에 대한 헌법소원심판도 있었는데, 헌법재판소는 배아가 배아 생성자의 기본권으로부터 도출되는 자기결정권의 대상이라고 판단했다. 배아는 비록 기본권의 주체는 아니지만 특별한 헌법적 지위를 가지는 존재이기에 그 배아의 보호를 위해 배아 생성자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보존 기간의 제한은 합헌이라고 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