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문
플라톤의 두 작품 『소크라테스의 변론』(이하 『변론』)과 『크리톤』에 대해서는 해석상의 문제가 있다. 『변론』에서 소크라테스는 국가가 자신에게 철학적 활동을 그만두라고 명령한다면 사형에 처해지더라도, 그 명령에 불복하겠다고 강변한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국가권력에 대해 개인 양심이 우선함을 주장한 철학적 순교자이자 시민불복종 정신의 선례로 이해된다.
그런데 『크리톤』에서 소크라테스는 탈옥을 종용하는 친구 크리톤에게 자신이 국가의 명령에 복종하여 사형을 받아들여야 함을 논증한다. 소크라테스는 부정의한 일을 하는 것이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 부정의한 일을 당한 경우에도 올바르지 않다는 원칙에 동의하는지 크리톤에게 묻고, 그 원칙에 따라 탈옥은 판결이 부당했더라도 부정의하다고 설파한다. 국민으로서 자신을 태어나고 자랄 수 있게 한 국가의 명령에 불복하는 것은 국가의 존립 근거를 해치는 부정의한 일이며, 따라서 국가의 명령이 비록 부당하더라도 복종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여기서 국가의 명령이 부당하다는 것은 법률의 내용이 아니라 판결이 부당함을 뜻한다. 만약 국가의 명령에는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권위주의적 주장을 『크리톤』의 소크라테스가 하는 것이라면, 『변론』의 소크라테스와는 상치된 주장을 하는 셈이다.
일관성의 문제는 『크리톤』 내부에 대해서도 제기될 수 있다. 크리톤이 논변의 중요 대목에서 소크라테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대답을 회피하자, 돌연 소크라테스는 의인화된 아테네 법률을 등장시켜 그 입을 빌려 탈옥 반대 논증을 이어간다. 후반부의 이런 방식의 대화 진행은 『크리톤』의 독특한 전개 방식이다. 전반부에 제시된 논증의 전제들이 소크라테스가 여러 대화편에서 일관되게 주창해왔던 원칙들인 반면, 후반부에는 권위주의적 주장으로 읽힐 내용이 많다. 그래서 후반부 논증이 과연 소크라테스 자신의 견해를 나타낸다고 이해해야 할지가 문제시된다.
이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먼저 두 작품에 개진된 각각의 입장 사이에 해소될 수 없는 모순이 있다고 주장하며 한 입장을 옹호하고 다른 입장을 비판하는 견해가 있다. 베트남 전쟁에 반대해 징집에 불복한 청년들을 옹호했던 하워드 진은 『변론』의 소크라테스가 영웅적으로 보여주었던 비판과 저항의 정신을 『크리톤』의 소크라테스는 포기했다고 주장하면서 우리는 전자를 본받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로트는 텍스트상의 모순을 플라톤의 저술 동기를 통해 설명한다. 『변론』의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아테네 법 위에 놓는 오만한 자라는 인상을 주는데, 이는 그가 국법을 무시하도록 조장했다는 고발의 내용을 확증해 주는 것이었다. 따라서 플라톤은 『크리톤』에서 소크라테스를 애국심에 대한 호소로 충만한 법의 수호자로 묘사하여 부정적 인상을 불식시키고자 했고, 바로 여기서 모순이 생겼다는 것이다.
한편 개리 영은 소크라테스의 철학 방법론에 주목하여 모순을 설명한다.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에서 논의 수준은 대화 상대자에 따라 조절되는데, 철학적 영민함을 갖추지 못한 크리톤을 엄밀한 이성적 방식으로 설득하는 데 실패하자 소크라테스가 후반부에는 '법률'을 내세워 그를 단지 감동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 해석에 따르면 『크리톤』 후반부의 논증은 소크라테스 자신이 받아들이지 않는, 단지 크리톤 같은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한 맞춤 논증일 뿐이다.
반면 앨런은 『크리톤』에서의 소크라테스의 논증을 자세히 분석하면 『변론』과의 모순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부정의를 저지르는 것', 즉 윤리적 원칙에 의거해 절대적으로 하지 말아야 하는 것과, '부정의를 감수하는 것', 예컨대 소크라테스의 경우 잘못된 판결의 해악을 감수하는 것을 개념적으로 구별하면서 텍스트를 읽으면, 『크리톤』 후반부도 권위주의적 주장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벤도 『크리톤』이 『변론』과는 상충되는 권위주의적 주장을 대변하지 않고 오히려 철학과 정치 간의 갈등을 극적으로 드러낸다고 본다. 소크라테스가 "부정의를 저지르기보다는 당하는 편이 낫고 어떤 경우라도 타인에게 의도적으로 해를 가해서는 안 된다."라는 자신의 가르침이 진리임을 입증하고자 적극적으로 죽음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탈옥하지 않고 국가의 명령에 복종하여 사형을 감내하는 것이 불완전한 현실 국가에서 살아가는 철학자가 오히려 도덕적 우위에 서서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