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문
역사적으로 희곡과 공연의 관계에 대한 탐색은 연극의 고유한 특성에 대한 물음과 이어져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은 단지 읽기만 해도 그 성질을 알 수 있다는 전제에서 비극의 창작술을 플롯을 중심으로 논했다. 다만 비극의 또 다른 요소인 '볼거리'는 비록 창작술과 거리가 멀지만 쾌감을 산출한다고 보았다. 고전주의 시대를 경과하면서 희곡의 대사는 작가의 사상과 플롯을 집약하는 공연의 중심 요소로 각인되었다.
이러한 위계는 연극학자 혼비가 희곡과 공연의 첫 번째 관계 유형으로 언급한 심포니 모델과 유사하다. 지휘자와 연주자의 개성이 존중되며 매번 다른 연주가 펼쳐지지만, 음표·선율 등을 지시한 악보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현대 연극은 다른 관계를 모색하는데, 무대 창작자들의 위상과 제작 과정에 따라 두 유형으로 나뉜다. 시네마 모델은 희곡과 공연의 관계를 영화 제작에 비유한다. 감독은 시나리오를 골격으로 삼되 이를 촬영 대본으로 고친다. 영화는 리허설 상황, 현장 여건, 스태프의 요구 등을 고려하여 대본을 조금씩 수정하며 제작된다. 조각 모델에서 연출가는 조각가에 비유된다. 조각가는 작업장에 있는 대리석 덩어리를 염두에 두며 작품을 구상한다. 적당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작업이 시작되지만, 영감은 과정 중에도 찾아온다. 조각가는 애초의 아이디어와 새로운 영감을 견주어 좋은 점을 선택하면서 작업해 나가며, 조각품이 그의 상상력을 오롯이 반영하였는지는 마지막에서야 파악된다. 온전한 '작품'으로서의 희곡은 대본으로 대체되거나 단지 많은 공연 요소 중 하나로 취급되기도 하는 셈이다.
희곡의 위상이 조정되는 과정은 20세기 연극인들의 논의에 힘입었다. 아르토는 연극에서 발화와 대화 상황을 우선한 나머지 연극적 표현은 그동안 억압되어 왔다고 분석한 후, 이제 연극의 독자적인 표현 수단을 회복하여야 하며 대사 역시 무대효과와 무대적 규칙 등과 유기적으로 연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주장은, '글로 쓰인 자료'에서 출발하여 무대에 실제 구축되는 '기호들의 두께', 혹은 제스처·어조·공간의 간격·오브제·조명 등에 대한 총괄적 지각을 가리키는 '연극성'에 대한 바르트의 논의와도 상통한다.
일반적으로 대사는 몸짓·어투·말소리의 크기와 같은 다양한 표현 안에 놓여 있고, 무대·조명·음향·소품 등은 희곡 안에 응축되어 있다. 그런 까닭에 독자들은 희곡만 읽어도 연극성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앞의 연극성 논의는 극의 대사나 무대지시문이 불러일으키는 상상이 무대적 전이보다 우선되는 '문학성 풍부한 희곡'이나 사실주의 연극관과 마찰하면서 논의의 지평을 넓혔다.
그렇다면 연극성은 희곡의 무대화 과정에서 어떻게 창조되는가. 현대 연출가들은 현실을 모형화하거나 상황과 감정의 본질적 특성들을 압축시켜 일정한 형식으로 표현하는 '양식화'에 대해 깊이 고민한다. 희곡의 플롯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극작가가 제안한 메시지를 무대에 구현하는 방식을 우선하는 ㉠++해석적 연출가++와 달리, ㉡++창조적 연출가++는 자신만의 미적 원칙 또한 중요하게 고려한다. 그래서 해석적 연출가는 희곡의 역사·사회적 맥락과 극작가의 사상 속에서 희곡을 검토하고 무대 기호의 확장을 고민하지만, 창조적 연출가는 플롯 이면의 숨겨진 의미나 이중의 메시지에도 관심을 둔다. 두 부류의 연출가들은 연극적 표현을 구체화하기 위해 여타 무대 창작자들과 함께 희곡을 양식화 안에서 재차 분석한다. 해석적 연출가는 통합적 무대 기호의 사용을 우선하지만, 창조적 연출가는 희곡의 지시 사항에서 다소 자유로운 표현에 대한 의견에 귀를 기울이며 공연 요소의 상호작용도 검토한다. 창조적 연출가의 작업에서 플롯의 전개와 호응하는 연극적 표현은 양식화의 원리와 충돌하지 않으면 일순 변형될 수 있고, 무대와 관객 간의 약속 또한 장면 안에서 재구축할 수 있다. 특정한 무대 기호를 부각하거나 무대 기호들의 의미가 서로 충돌하여 연출가의 관점과 극작가의 관점이 긴장하는 장면 역시 시도될 수 있다.
30. 〈보기〉의 무대화를 구상할 때, 윗글의 내용으로 보아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 기〉
[앞부분의 줄거리 : 황야의 망루. 위에서 '이리떼다!'라고 외치면 아래의 파수꾼은 양철북을 쳐야 한다. '나'는 외로움 끝에 새로 충원을 요청했고 '다'가 유일한 지원자였다.]
황혼이 점점 짙어진다. 해설자, 슬그머니 등장, 마분지로 만든 초승달을 하늘에 걸어놓고 퇴장. 두 파수꾼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아 있다.
나 : 야, 하늘 곱다. 그지?
다 : 네.
나 : 어제 저녁 네가 올 때도 이랬다. 난 평생 그 광경을 잊지 못할 거다. (잠시 침묵) 어떠냐, 너 양철북 치는 방법을 배우지 않을래?
다 : 배우겠어요.
나 : 그러면서도 넌 망루 위만 바라보는구나. 그렇게도 올라가고 싶으냐?
다, 고개를 떨군다.
나 : 양철북 치는 것두 괜찮은 거란다. 소리가 요란하긴 하지만 귀에 익으면 그 재미를 알게 된다. 자아, 우선 여러 가지 박자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마. (그는 강약을 두어 양철북을 두드린다) 재미있지? 이 박자치기에 맛 들이면 어느새 이리떼같은 건 다 잊어버린다. 자, 너도 쳐보아라.
다 : (나를 따라 양철북을 치다가 갑자기 겁에 질려서 나의 등 뒤에 숨는다) 저기, 저기…….
나 : 왜 그러니?
다 : 이리가 오구 있어요.
해설자, 식량 운반인이 되어 등장. 이리 껍질을 썼다. 유모차 비슷한 작은 손수레를 밀며 들어온다.
— 이강백, 「파수꾼」
- ㉠과 ㉡은 모두 불그스름한 조명과 '나'의 대사, 황야의 바람 소리를 동시에 연출하여, 희곡에 등장하는 시공간을 풍요롭게 표현할 수 있겠군.
- ㉠과 ㉡은 모두 '침묵'을 무대화할 때 '망루'를 보는 '다'와 '다'를 보는 '나'의 시선을 어긋나게 배치하여, 인물의 지향이 서로 어긋나 있음을 보여줄 수 있겠군.
- ㉠이라면 '다'의 '양철북' 소리를 기계 음향으로 대체하고, '손수레'가 등장할 때까지 점차 빨라지는 북소리를 연출하여 희곡 속의 불안과 긴장감을 고조할 수 있겠군.
- ㉡이라면 '해설자'가 관객을 인도하여 '초승달'을 걸게 하는 장면을 연출하여, 공연은 관객과 배우 사이의 약속된 놀이라는 관점을 드러낼 수 있겠군.
- ㉡이라면 '손수레'를 고급 승용차처럼 꾸며 무대 위에 연출하여, 희곡에서 다루지 않았던 새로운 의미망을 조직할 수 있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