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문
법학 전통에서 대체로 자연은 인간에게 유용한 것들의 총체이자 집단 혹은 개인의 자산으로 간주된다. 소유 대상으로서의 자연은 그것을 둘러싼 인간 상호 간의 권리의무관계를 위해 존재한다. 생태사상가 베리는 인간이 세계 전체 혹은 타자와 맺는 관계 양식이 인간중심의 법규범에 반영되어온 동시에 그러한 법규범에 의해 강화되어 왔음을 지적한다. 법적 인격만을 권리와 의무의 주체로 보고 인격 아닌 모든 존재자는 행위의 객체인 물건으로 보는 법은 자연의 가치를 인간의 손익과 관련지어 평가할 뿐 존중하진 않았다. 최장 시간에 걸쳐 최대 다수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방식으로 자연자원을 향유하기 위해 보호해야 한다는 보전주의적 관점 역시 근본적으로 인간을 중심에 둔다. 베리가 주창한 지구법학은 생태계를 구성하는 모든 존재의 권리를 지구권으로 정립하려 한 급진적인 법사상이다.
비인간 존재자에게 권리를 인정할 수 있는가에 관해서는 그간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어 왔다. 가령 레건은 살아있음을 넘어 스스로가 삶의 주체임을 경험할 수 있는 존재는 상대적으로 더 월등한 존재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희생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논거로써 동물의 권리를 옹호한다.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선을 가지며 그 고유한 가치의 잠재성이 실현되어야 한다고 본 테일러는 식물을 포함한 생명체까지를 권리의 주체로 이해한다. 더 나아가 지구법학은 우주의 질서 안에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에서 그것이 권리를 가진다는 규범적 결론을 끌어낸다. 이에 따르면 물리적으로 지속되는 실체를 갖거나 일정한 지리적 영역을 점하는 존재자인 무생물의 권리도 인정된다. 지구법학의 지향을 '야생의 법'이라 표현한 컬리넌은 다양한 창조물들의 생존과 안녕은 인간이 아니라 지구 행성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임을 강조하며 권리 주체에 대한 과감한 인식 전환을 촉구한다. 인류는 그간 법에서 억눌러 왔던 감성과 감각을 되살려 지구공동체의 춤에 참여하고, 그 박자에 스스로 몸짓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구권은 존재할 권리, 서식지에 관한 권리, 지구공동체가 부단히 새로워지는 과정에서 자기 역할과 기능을 수행할 권리 등으로 구체화된다. 강은 강의 권리를, 새는 새의 권리를, 인간은 인간의 권리를 가지며, 각 권리의 존재 양태는 저마다 다르다.
이러한 권리 개념을 수용하여 구체적인 법의 근거로 채택한 ㉠++사례++도 없진 않다. 전문에서부터 '우리가 그 일부이자 우리의 생존에 필수적인 어머니 지구'와의 조화를 언급한 에콰도르 헌법이 그 예이다. 헌법에 환경권을 명시한 국가들 대부분이 국민의 더 나은 삶과 인류의 지속가능성만 환경을 보전·관리할 목적이라 본 데 반해, 에콰도르는 '생명의 순환과 진화 과정을 유지하고 재생을 존중받을 권리'와 '자연이 스스로를 원상회복할 권리'를 헌법에 규정한다. 또한, 누구든 청원권을 행사하여 자연의 권리를 집행할 수 있음을 명시한다. 볼리비아는 〈어머니 지구의 권리에 관한 법〉에서 자연의 고유한 권리를 인정하고 생태계가 본성 그대로 유지·회복하는 과정을 도울 국민의 의무를 규정한다. 한편 뉴질랜드는 전체로서의 자연의 권리를 보호하는 방식 대신 특정 생태계나 종의 권리를 개별적으로 보호하는 방식을 택한다. '내가 강이고 강이 나다.'라는 마오리족의 믿음을 존중하여 황거누이강을 법적 인격체로 규정하고, 그 권리는 법이 정한 후견인이 강의 이름으로 강을 대리하여 집행할 것을 명시한 〈테 아와 투푸아법〉이 그 예이다. 흐르던 물길이 가로막힌 강이나 서식지를 침범당한 새의 권리는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려는 환경운동의 기획을 넘어 구체적인 법리 구성 단계에서도 다루어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