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문
존 포드(John Ford) 감독은 서부 영화를 스트레스 해소용 활극에서 인문학적 깊이를 지니는 장르로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는데, 그의 작품 가운데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이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1962)이다.
영화는 상원 의원 랜스가 과거를 회고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동부에서 갓 변호사 자격을 획득한 랜스는 마차를 타고 서부 지역을 지나다가 무법자 리버티 밸런스 일당의 습격을 받아 큰 부상을 입는데, 톰과 그의 연인 할리 덕분에 목숨을 구하고 신본이라는 마을에 살게 된다. 그곳 사람들은 종종 마을에 나타나 행패를 부리는 리버티에게 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마을 보안관 역시 리버티 앞에서 벌벌 떠는 소인배일 뿐이다. 피바디라는 지식인이 ‘신본 스타’라는 신문사를 통해 근대적 이념을 전파하려 하지만, 주민 대부분이 문맹인 그곳에서 무력감만 느낀다. 리버티가 겁내는 사람은 자기보다 힘세고 총을 더 잘 쏘는 톰뿐이다.
랜스는 이러한 상태를 방관할 수 없다는 생각에 야학을 열어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한편, 변호사 사무실을 열어 리버티의 법적 기소를 꾀한다. 그를 보면서 톰은 리버티를 이길 수 있는 건 총뿐이라며 비웃는다. 그러던 중 리버티 일당에 의한 피바디 살인 미수 사건이 벌어지자, 랜스도 법의 무력함을 절감하고 결투를 통해 리버티를 쏘아 죽인다. 그래서 랜스는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로 불리게 된다. 이윽고 서부에서도 연방 상원 의원 선거가 시작되자 랜스는 후보로 출마한다. 하지만 자신의 소신을 어기고 총을 사용했다는 죄책감에 후보직을 사퇴하려 하자, 톰이 나타나 자신이 숨어서 리버티를 저격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비밀을 얘기하던 중 톰은 “당신은 너무 생각이 많고 말도 많아.”라고 빈정대지만, 랜스가 유세장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때가 왔음을 쓸쓸히 받아들인다. 결국 랜스는 선거에서 이긴다. 그리고 톰을 사랑했지만 랜스 또한 사랑했던 할리는 랜스와 결혼한다.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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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이처럼 주먹과 권총의 시대가 가고 이성과 법의 시대가 시작되려는 미국의 역사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작품은 문화철학자 비코를 떠올리게 한다. 비코는 법제도가 이성적·객관적 실체로서 정의를 실현하는 근대적 단계를 ‘인간의 시대’로, 개인의 감정과 물리적 힘이 최종심급(最終審級)이었던 야만의 단계를 ‘영웅 시대’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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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포드가 비코의 저작을 읽었다는 증거는 전혀 없지만, 영화의 두 ‘사나이’는 비코가 대비시키는 두 시대 유형에 그대로 대응한다. 즉 톰과 랜스는 각각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시작하는 시대와 새롭게 도래하는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톰이 허리에 차고 있는 권총과 랜스가 들고 온 법전은 그것을 잘 보여 준다. 이러한 대립적인 이미지는 랜스가 물을 끌어 들여 기르는 장미와 톰이 애착을 보이는 거친 사막의 선인장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갈등 관계에 있는 두 대립적 가치를 하나의 예술적 장치로 엮어 형상화함으로써 자신의 ㉠++양가적(兩價的) 지향성++을 우회적으로 노출시키는 포드 감독의 전략이다. 이는 등장인물에 포드 자신이 투영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제목 자체가 두 인물을 동시에 가리킨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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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호쾌한 장면 연출을 극도로 억제함으로써 다른 대부분의 서부극과 달리 관객에게 높은 수준의 감상 능력을 요구한다. 즉 이 영화의 예술적 이미지는 더 이상 감각적으로만 소비되는 대상이 아니라 일종의 변용된 이미지로서, 피상적 접근만으로는 판독될 수 없는 심층적 내용을 담고 있다. 이렇게 예술 작품은 그것의 생산 과정뿐만 아니라 수용 과정에서도 지적 도야를 불가결의 조건으로 요구하거니와, 한갓된 감각적 쾌 또는 불쾌에서 소진되지 않는다. 더욱이 수작으로 평가되는 작품들에는 심층 의식, 사상, 가치관, 세계관 등은 물론 예술 자체의 정체성에 대한 작가의 생각까지도 예술적 장치 안에 교묘하게 숨겨져 있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작품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선이해(先理解)가 갖춰지지 않으면 결국 그 작품들은 수수께끼로 남는다. 요컨대, 훌륭한 예술적 이미지는 육안으로 ‘보는’ 대상에 그치지 않는, 심안으로 ‘읽어야’ 할 일종의 텍스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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