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문
전통적으로 경제학은 자신의 욕구를 효율적으로 충족하려는 합리적인 경제주체가 타인에게 무관심하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근래에는 공정성이나 자선, 신뢰, 보복과 같이 타인을 고려한 행동들에 관심이 커지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엇갈린 견해가 존재한다.
타인을 고려한 행동이 경제학의 설명과 충돌한다고 보는 견해는 이런 행동이 보편적인지 알아보기 위해 흔히 실험에 의존하는데, 다음 게임이 그 한 예이다. 제안자와 응답자 사이에 나눌 공동 자금이 주어진 상황에서, 이 돈을 어떻게 나눌지를 제안자가 결정한 다음 응답자는 그 결정을 받아들일지를 결정한다. 응답자가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제안자와 응답자는 제안된 금액을 받지만, 응답자가 그것을 거절한다면 두 사람 모두 아무것도 받지 못한다. 경기자들이 합리적이라고 가정하여 게임의 결과를 예측해 보자. 경기자가 순서대로 선택하는 순차적 게임의 상황이므로, 마지막 선택자의 결정부터 먼저 고려한 다음 선택의 역순으로 경기자의 결정을 추론하는 역방향 추론을 사용한다. 만약 두 경기자가 타인이 얼마를 갖든 괘념치 않고 자신의 몫에만 신경 쓴다면, 0보다 더 많은 돈을 주겠다는 어떤 제안도 응답자가 받아들일 것이므로 제안자는 가장 적은 금액을 제안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실험 결과, 대부분의 제안자는 주어진 자금의 2550%를 응답자에게 주겠다고 제안하고 5% 이하를 제안하는 경우는 드물다. 또한 응답자는 자주 20%보다 낮은 금액의 제안을 거절한다. 이런 결과에 기초하여 많은 사람이 불공정한 행동을 처벌하기 위해 자신의 행복을 희생하는 선택을 한다고 보아 경제학의 합리성 가정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행동이 경제학의 본질과 상충하지 않는다고 보는 견해는 타인을 고려한 행동도 합리성 가정에 기초하여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이에 따르면, 애초에 경제학은 사람들이 무엇에 얼마만큼의 가치를 매길지를 말해 주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가치를 부여하는 대상의 가격이 상승할수록 그 사람이 그 대상을 선택할 가능성이 감소한다는 예측을 제공하는 학문이다. 공동 자금의 크기를 달리하면서 위의 게임을 여러 차례 실험한 결과, 그 크기가 클수록 제안자가 제안하는 몫의 비율이 더 낮았다. 불공정한 제안이라도 액수가 크면 응답자가 거절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제안자가 생각했을 것이다. 실제로 응답자의 선택도 그러했다. 공정성에 가치를 매기는 사람들의 선택도 경제학의 예측에 부합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 결과를 해석할 수 있다.
이 견해는 자선이나 보복도 합리적으로 선택된다고 설명한다. 보통의 재화처럼 자선 기부도 그 선택이 소득과는 같은 방향으로 변화하고 가격과는 반대 방향으로 변화한다면, 소득세율이 바뀔 때 기부의 선택도 달라질 것이다. 과세에서 기부 금액이 소득 공제되지 않는 경우, 소득세율은 기부 선택자의 세후 소득에 영향을 준다. 그러나 기부가 소득 공제되는 경우, 가령 소득세율이 70%라면 100만 원을 기부하기 위해 치르는 가격은 30만 원이고 28%라면 72만 원인 데서 알 수 있듯이, 소득세율은 기부자의 소득뿐만 아니라 기부 행위의 가격에도 영향을 준다. 1980년대 미국 조세 개혁을 분석한 한 연구는, 소득세율이 70%에서 28%로 낮아져 모든 계층 가운데 가장 큰 폭의 ㉠ ++소득세율 인하++를 경험한 최고 소득 계층에서 소득 공제되는 자선 기부가 가장 많이 감소했다는 증거를 찾아 위의 예측이 타당함을 보였다.
끝으로 보복을 설명하는 출발점이 되는 신뢰 게임에 대해 알아보자. 계속 만날 일이 없는 2명의 경기자 A와 B가 의사결정을 하는데, A가 먼저 선택한다고 하자. A가 B를 신뢰하지 않는다면 두 경기자는 모두 10의 보수를 얻는다. 만약 A가 B를 신뢰한다면, B는 배신이나 협조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다. B가 배신한다면 A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B는 30의 보수를 얻는다. B가 협조한다면 B와 A 모두 15를 얻는다. 〈그림 1〉에서 역방향 추론을 이용하면, 마지막 선택자인 B는 배신을 선택할 것이고 이를 예상한 A는 B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두 경기자 모두가 더 좋아지는 기회를 잃는 결과이다.
이러한 결과를 바꿀 수 있는 요인으로 몇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우선, B가 도덕규범을 내면화하여 신뢰받는 사람이 되고 싶을 수 있다. 이 경우, B가 배신할 때 20의 벌금과 맞먹는 죄책감을 느낀다고 생각한다면, 〈그림 2〉와 같이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 ++B의 배신에 대해 A가 보복할 기회가 존재하는 상황++도 결과를 바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