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문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경험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기계를 상상해 보라. 이 '경험 기계'에 연결되기만 하면 두뇌를 자극하여, 세계 최고의 부호가 되는 성취감, 노벨상을 받는 기쁨, 가장 좋아하는 아이돌과 연애할 수 있는 짜릿함을 현실처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다만 기계에 연결된 동안에 거기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없다. 이 기계와 연결되어 원하는 모든 쾌락을 경험하는 삶을 선택하겠는가?
철학자 노직은 우리의 행복, 즉 삶의 좋고 나쁨이 전적으로 우리가 느끼는 쾌락과 고통에 따라 결정된다는 쾌락주의를 거부하기 위해 이 사고 실험을 제안했다. 만약 쾌락주의의 주장대로 쾌락이 우리가 추구할 유일한 가치라면 사람들은 그것을 만끽하게 하는 경험 기계에 연결되기를 원할 텐데, 노직은 사람들이 연결을 거부할 것이라고 믿었다. 우리는 단순히 쾌락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특정한 주체가 주변 사람과 함께 '실제로' 살아가는 삶을 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경험 기계 사고 실험은 한때 ㉠ ++사람들이 현실을 선택한다는 사실 판단++으로부터 ㉡ ++현실이 쾌락보다 가치 있다는 규범 판단++을 도출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사실 판단에서 규범 판단은 필연적으로 도출되지 않으므로 이런 이해는 잘못이다. 경험 기계 사고 실험에 대한 또 다른 이해는, 사람들이 경험 기계 대신에 현실을 선택하리라는 사실을 가장 잘 설명하는 가설은 현실이 본래적 가치를 갖는다는 규범 판단이라는 것이다. 현실이 본래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는 가설은 경험 기계에 연결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반응에 대한 '최선의 설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사람들이 현실을 더 선호하는 선택에 포함된 비합리적인 요소 및 편향을 지적함으로써 이 최선의 설명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었다. 먼저 '쾌락주의적 해석'은 경험 기계 속의 쾌락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오히려 쾌락적 동기에 따른 것임을 나타낸다고 본다. 경험 기계에 연결된 삶을 거부하는 선택의 궁극적 이유는 가짜 쾌락을 경험하는 것보다 현실의 삶을 사는 것이 더 큰 쾌락을 가져다줄 것이라 믿기 때문일 수 있다.
경험 기계 사고 실험을 교란하는 또 다른 왜곡 요인으로 '상상의 실패'가 지적된다. 경험 기계는 오작동이 발생하지 않으며 추가적인 고통 없이 원하는 쾌락을 경험하게 해 준다고 가정하는데, 실험의 참가자들은 이 조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또 경험 기계에 연결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영화의 장면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경험 기계에는 실제로 그런 위험성이 전혀 없다고 가정했는데도 말이다.
경험 기계에 연결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인간이 가진 '현상 유지 편향'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라는 설명도 주목받는다. 경험 기계 사고 실험의 참가자는 평생을 살아온 익숙한 현실 속에서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새로운 가상 공간으로 이동할 것인지의 여부를 선택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현실을 선택하려는 반응은 쾌락과 현실에 대해서 심사숙고한 가치 평가의 결과라기보다는 설령 쾌락이 보장된 곳이라고 하더라도 새로운 환경으로 변화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반영된 것일 수 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원래의 사고 실험을 약간 변형한 '역전된 경험 기계'를 상상해 보자. 만약 당신이 이미 경험 기계와 연결된 상태이며, 지금까지 당신의 모든 경험과 기억은 기계가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당신은 경험 기계와의 연결을 끊고 현실로 돌아가길 원하는가? 실제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하자 많은 사람은 만약 지금까지의 삶이 경험 기계가 만들어 낸 것이라도 기계 속에 계속 머물겠다는 선택을 내렸다. 요컨대, 경험 기계를 거부하는 이유는 쾌락과는 무관하게 현재 상태에 집착하는 심리 때문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