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문
[앞부분의 내용] 한창 개발 중인 서울 변두리 'S동'의 학교로 강 건너편에 사는 음성 한센인의 자녀들이 편입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문둥이의 아이들이 강 건너 이편으로 온 것이다. 문둥이의 아이들이. 문둥이의 아이들. 한 번도 우리들은 문둥이를 본 일이 없다. 우리가 가끔 바지를 내리고 무책임한 오줌을 갈기던 강, 가까운 화력발전소의 중유가 둥둥 떠서 흐르는 강, 돌팔매질이나 자꾸 무의미하게 던져 대던 강, 도대체 흘러가는 것 같지도 않고, 그저 고여 자꾸 썩기만 하는 것처럼 짙은 암갈색의 강 저편에서 문둥이의 새끼들이 강 건너 이편으로 건너온다.
…(중략)… 보이지 않는 이물질에 의한 이물감이 온 동리에 충만되고 있었다. 인심 좋은 개들도 그들을 보면 짖었다. 단순히 생각하는 이미지, 즉 문둥이들은 날카로운 면도칼을 손가락 사이에 접고 있다가 가슴을 석류알처럼 짜갠다는 것과, 눈에 눈썹이 없다는 사실이 그 아이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판명된 이후에도, 그들은 좀 더 주의 깊게 과연 이 새로운 아이들이 도대체 무엇이 우리와 달라 격리된 존재인가를 관찰하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마을 아이들은 조심스럽게 그러다가는 후딱후딱 놀라면서 그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들이 조그마한 밀집을 이루면서 펌프 물에 머리를 처박고 담수어 같은 움직임을 할 때에도 동네 아이들은 둥그렇게 서서 그 나환자촌 아이들을 관찰하였으며, 몇몇 용감한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스쳐 지나가면서 계집아이의 ㉠ ++살갗을 스쳐 보기++도 하고, 그들의 손가락 사이를 유심히 쳐다보기도 하였다. 간혹 못된 애들은 갑자기 침을 뱉고 물방개처럼 도망가곤 했다. 그럴 때마다 키 크고 가슴 넓은 한 소년이 이를 악물고 ㉡ ++돌을 들어 발작적으로 던지곤 했다.++ …(중략)…
그 즈음이었다. 그들이 하학길에 동네 어귀에 있는 우물가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퍼서 세수를 하려 했을 때였다. 그들 주위에 서서 오랫동안, 참으로 오랫동안 ㉢ ++따가운 초가을의 햇살++ 속에서 흔들거리는 이빨이 빠지려는 짜릿한 아픔과 또 한편의 새로운 쾌감 속에서 뜨거운 침을 삼키던 소년 중의 하나가 갑자기 거들먹거리며 그들 곁으로 다가갔고, 막 두레박을 들어 올리는 소년의 손에서 두레박을 빼앗았던 것이다. 안 된다. 소년은 두레박 끈을 잡고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문둥이촌 아이들 중 몸이 큰 소년이 덤벼들었다. 뭐라구 안 된다구. 그래 어째서 안 된다는 거냐. 너희들은…… 소년은 가슴에 힘을 주며 단정을 내렸다. 문둥이다. 문둥이는 전염된다. 뭐라구. 아이는 이를 악물었다. 문둥이라구. 너희들이 우리 우물에서 물을 먹으면 온 동네에 문둥병이 전염된다. 소년의 말이 아이들에게 무슨 뜻인가 전달되기엔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 침묵 속에서 두 소년은, 아니 두 무리는 필사적으로 상대방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소년은 아이가 어리둥절해 있는 것을 보자 말을 덧붙였다. 너희 몸에선 냄새가 난다. 그래 문둥이 냄새 말이다. 뒤의 다른 소년이 동조를 했다. 그 순간 딱정떼처럼 문둥이촌 소년이 덤벼들었다. 소년의 굵고 질긴 팔은 그들에게 시비를 걸었던 소년을 단숨에 때려뉘었다. 소년의 코에서 코피가 튀었다. 아이는 소년의 얼굴을 이빨로 물었다. 그리고 그는 자기를 겁에 질린 모습으로 보고 있던 동네 소년들을 쳐다보고 분노에 차서 소리를 질렀다. 덤빌 녀석 있으면 또 나와라. 너희들 핏속에 모두 문둥이 피를 옮겨 놓고 말 테다. 이빨로 물어뜯어서 말이다.
그날 저녁 문둥이촌 소년에게 이마를 물린 소년은 두려움 속에 집으로 돌아왔다. 소년은 몇 번이고 얼굴을 비누로 씻었다. 그리고 거울을 보았으나 아이가 이빨로 사납게 문 이마의 자국은 더욱더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소년은 자기가 졌다는 분노보다는 핏속으로 무언가 산기슭에서 옻과 같은 독소가 뛰어들어 간 듯한 공포심에 와들와들 떨어 대고 있었다. 언젠가 마을에서 추하고 충혈된 눈을 가진 개가 미친 듯이 뛰어나온 일이 있었다. 미친개다, 하고 어른들이 문을 잠그면서 말을 했다. 물리면 죽는다. 나가선 안 된다. 소년은 ㉣ ++싸리울타리++로 그 개가 비틀거리며, 그러다가는 사납게 짖으며 거리를 달리다가는, 서서 공허하게 짖는 것을 보고 있었다. 개는 가로수를 껑충이면서 물어뜯기도 하고, 그러다가는 산 사람의 그것처럼 빛이 나면서 이쪽을 노려보기도 했다. 그 순간이었다. 파출소에서 나온 순경이 거리 끝에 서서 개를 향해서 총을 들었다. 개는 무표정하게 자기를 겨누고 있는 순경을, 그리고 총구를 쳐다보았다. 뜨거운 여름 햇살이 거리를 훅훅 끼쳐 오르고 있었다. 이윽고 한 방의 총성이 울리자, 개는 선 자리에서 거꾸러졌다. 그러자 온 집의 문이 열리고 미친 듯이 동네 애들이 거리로 뛰쳐나갔다. 아아, 사랑스런 개, 미친개는 배를 드러내고 죽어 있었다. 아직도 문득문득 다리에 경련을 해가면서, 그 기억을 상기해 낸 소년은 더욱더 공포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황혼이 깃드는 거리로 뛰쳐나가 주유소를 경영하고 있는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그의 아버지는 유리창 너머로 그의 아들이 눈물이 가득해서 헐떡이면서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무언가 수상스런 낌새를 눈치챘다. 그것은 비가 오기 전 ㉤ ++유난스레 날갯짓하는++ 어린 새들의 침착지 못한 몸 움직임이었던 것이다. 그는 아들에게서 사건의 전말을 들었다.
— 최인호, 『미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