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문
권위주의로부터 민주주의로의 이행은 국가 권력에서 정통성이 없는 권위주의 정치 세력을 배제하고 선거 경쟁을 통해 정부를 구성하여 민주적 절차를 마련해 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민주주의로의 이행 과정을 중시하는 주창자들은 공통적으로 민주주의란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얻기 위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경쟁에서 다수의 표를 얻은 정당 및 정치인들이 국가 권력을 획득하는 제도적 장치라는 점을 강조한다. 민주주의를 정치적 경쟁 및 참여가 보장되는 기본적인 절차로 해석하는 것도 이러한 설명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러한 절차적 제도로는 투표권, 공무 담임권,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결사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참여 기회가 확대되었다고 실질적 참여가 확대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정기적이고 공정한 선거 경쟁을 통해 대표와 정부가 구성되고 국민을 대변하는 절차가 확보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경제적 균열과 사회적 갈등이 해소되는 것도 아니다. 오늘날 상당수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권력 및 자원 배분상의 불합리로 권력 남용과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이 만연하여 갈등과 긴장이 조성되고 있는 것은 이를 방증한다. 그러므로 국민의 참여와 선택에서 연유하는 정치적 대표성이 보다 확고히 보장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취약한 집단들이 정치 과정에 참여하고 대표될 수 있는 실질적인 장치가 확보되어야 한다. 또한 정치 기구가 자원 배분을 위한 정책 결정 및 집행을 수행하고, 이를 통해 실현된 성과와 실적이 국민의 요구에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부응하는 응답성이 마련되어야 한다. 아울러 선출된 대표가 국민의 완벽한 대리인으로 행위하도록 통제해야 하고, 국민의 이익을 위해 일하지 않는 대표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 퇴출되는 책임성도 강화되어야 한다.
이것은 민주주의가 다양한 국민의 참여를 통하여 사회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을 제도화함으로써 자기 지속적인 체제로 확립되어 가는 과정, 즉 민주주의의 공고화로 일컬어진다. 현대 사회는 시민 사회, 정치 사회, 국가 그리고 경제 사회 등 부분 체제들의 복합체이다. 민주주의의 공고화는 각 부분 체제의 제도화 과정이고, 각 부분 체제들은 상호 의존적이다. 우선, 이익 표출 및 집약 기능을 수행하는 시민 사회의 결사체들이 보다 포괄적으로 조직되어 협력하는 네트워크 및 사회적 신뢰를 구축하고 이익 갈등을 조정했을 때 민주주의 공고화가 가능해진다. 사회 구성원 개인과 집단의 이해가 개별적으로 분산되는 것이 아니라, 자율적인 결사와 제도적 장치 마련을 통해 시민 사회 내의 요구 사항이 취합되어 갈등 조정이 용이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선거, 정당, 의회 등으로 구성되는 정치 사회가 사회적·경제적 균열로 인한 갈등을 정상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규범, 규칙 및 절차를 갖고 있을 때 민주주의는 공고화될 수 있다. 정치 사회의 공식 및 비공식 행위자들이 경제사회적 균열구조에 조응하여 편제되고, 이들의 이익을 정치 영역에 합리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구조를 제도화할 때 민주주의는 보다 성숙되는 것이다.
아울러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정책 결정 및 집행을 통해 갈등 조정을 시도하는 국가 능력, 그리고 경제적 지배 세력의 압력이나 이익으로부터 자유로운 국가의 자율성 역시 민주주의의 공고화에 중요한 관건이다. 국가가 특정 세력의 정치적·경제적 이해를 관철하는 도구적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고, 합리적인 국가 운영을 통해 구성원의 이해를 통합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은 갈등 확산을 방지하여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데 있어 결정적이다.
마지막으로 국가와 시장을 매개하는 경제 사회가 자본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고, 시장 경제의 비윤리성을 치유하는 복지 제도를 통해 시장 실패자들이 겪는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사회 안전망을 경제 사회 내의 합의를 중심으로 제도화할 때 민주주의는 공고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