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문
나라는 민(民)을 근본으로 삼고 민은 재물로써 살아가니, 애민(愛民)하는 요체는 마땅히 절용(節用)을 앞세워야 하고 절용하는 실속은 소비를 줄이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습니다. 소비를 줄이지 않고 쓰는 것을 절약하지 않는다면 곤궁함에서 회생시켜 그 생계를 후하게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가난한 나라입니다. 국토의 절반이 산과 계곡이고 인구는 적은데 유식(遊食)하는 사람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재물을 생산할 자원이 풍부하지 않으니 재물을 더욱 절약해서 사용해야 할 것인데, 검소를 숭상하는 교화(敎化)가 거친 명주옷을 입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사치를 경쟁하는 풍습이 갈수록 민간에 성행하고 있습니다. 사대부들 사이에 의복과 음식의 제도가 옛날에는 없던 것이 지금은 있는 것이 있는데 옛날 것은 검소했으나 지금 것은 사치스러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로부터 풍속이 날로 사치로 치닫고 재용(財用)이 날로 부화(浮華)함에 빠지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재물이 모두 소민(小民)들의 고혈(膏血)에서 나오는 것이니 백성들이 어찌 빈궁하고 곤란하게 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는 말세에 풍습이 변화된 데 따른 것일 뿐 아니라 군상(君上)께서 영도(領導)하여 통솔하시는 방도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신이 근심하고 있는 것은 곧 국가의 경비입니다. 숙종조(肅宗朝) 초년에는 한 해 국가의 용도를 통틀어도 8, 9만에 불과했는데 말년에 이르면서는 갑절이 되었고 영조조(英祖朝) 초년에는 이미 숙종조 말년의 액수를 넘어섰다가 근년에 이르면 또 갑절이 되었으며 전하께서 즉위하셨을 때는 영조조 말년보다도 더 많아졌습니다. 작년에는 산릉(山陵) 조성 공사가 크게 일어나고 객사(客使)의 영송(迎送)이 빈번했기에 상례(常例)와 비교할 수 없지만, 숙종 초년과 비교할 때 몇 곱절이 됩니다. 조종(祖宗) 이래 수백 년 동안 해마다 그 땅 그대로이고 해마다 그 백성 그대로이어서 땅도 더 열리지 않았고 가호(家戶)도 증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부세(賦稅) 수입은 줄기만 하고 늘지 않았으며 경비 지출은 늘기만 하고 줄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홍수나 가뭄 등 재해와 전쟁으로 인한 의외의 지출이 없었던 것입니다.
신이 공부(貢賦)를 맡은 사람이 논한 것을 듣건대 한 해의 수입으로 반년의 용도를 지탱하지 못하고, 근근이 살림살이를 이끌며 겨우 눈앞의 일만을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관서(關西) 지방의 소미(小米)와 다른 관사(官司)에 남아 있던 저축 덕분이었습니다. 항아리에 담아 둔 물은 모두 우물 속의 물이고 잔에 따라 놓은 술은 모두 병 속의 술인 것이기에, 우물이 마르면 항아리가 비게 되고 병이 기울어지면 잔이 마르게 될까 두렵습니다.
신이 이미 여러 차례 영해(嶺海)에서 천적(遷謫)을 겪으면서 백성들의 곤궁과 질고를 익히 목도했습니다. 매양 보면 뼛속까지 어는 추위에도 껴입을 옷이 없고 창자가 주리어도 먹을 것이 없으며 집을 울타리로 가리지도 못하고 거적자리도 갖추지 못하고 있는데 구실을 재촉하는 엄명은 성화보다도 다급하고 채찍의 고통이 살과 뼈에 닥치니, 때 없이 옮겨 다니고 오래지 않아 죽게 되며, 남아 있는 사람은 떠나간 사람들이 내지 않은 구실까지 물어야 하고 살아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들의 구실까지 담당해야 하는데도 대궐 문은 멀기만 하여 호소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담아 두었던 것을 모조리 털어 겨우 세납(稅納)에 충당하니 항아리와 단지가 모두 깨져 이미 그해를 넘길 거리가 없게 됩니다.
설령 나라에서 날마다 쓰는 비용이 조금 여유가 있더라도 오히려 조금씩 거두어들인 것을 흙이나 모래 쓰듯이 하는 것은 마땅치 않거늘, 하물며 지금 나라 회계의 곤란이 이와 같은 지경에 이르고 소민(小民)들의 곤궁과 고통이 이와 같은 때이겠습니까? 안으로는 궁금(宮禁)과 밖으로는 관부들의 남용을 개혁하되, 수입을 헤아려 지출을 억제하고 옛적에 3년이 되면 한 해의 것이 남도록 저축하던 일을 법으로 삼는다면, 사치하는 풍습이 고쳐지고 용도를 절약한 효과로 백성들이 곤궁에서 회복될 수 있을 것입니다.
― 조선왕조실록, 정조 1년 대사헌 정창순의 상소문 ―
16. 〈보기〉의 필자가 위 글을 비판한다고 할 때, 가장 적절한 것은?
〈보기〉
우리나라는 검소함 때문에 쇠약해졌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구슬을 캐는 집이 없고, 시장에 산호 같은 보석이 없다. 또 금이나 은을 가지고 가게에 가도 떡조차 살 수 없는 형편이다. 이것이 정말 검소한 풍속 때문일까? 아니다. 이것은 물건을 이용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용할 줄 모르니 생산할 줄 모르고, 생산할 줄 모르니 백성들이 나날이 궁핍해지는 것이다. 재물이란 우물의 물과 같다. 퍼내면 차게 마련이고 이용하지 않으면 말라 버린다. 그렇듯이 비단을 입지 않기 때문에 나라 안에 비단 짜는 사람이 없고, 그릇이 찌그러져도 개의치 않으며 정교한 기구를 애써 만들려 하지 않으니, 기술자나 질그릇 굽는 사람들이 없어져 각종 기술이 전해지지 않는다. 심지어 농업도 황폐해져 농사짓는 방법을 잊어버렸고, 장사를 해도 이익이 없어 생업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이렇듯 사민(四民)이 모두 가난하니 서로가 도울 길이 없다. 나라 안에 있는 보물도 이용하지 않아서 외국으로 흘러 들어가 버리는 실정이다. 그러니 남들이 부강해질수록 우리는 점점 가난해지는 것이다.
- 상업이 발달해야 경제가 성장하는 법인데 농산물의 지역 간 유통을 억제하는 것은 잘못이다.
- 주변 국가와의 경제 격차를 해소해야 하는데 지방 재정의 곤란에만 관심을 집중하는 것은 잘못이다.
- 백성의 궁핍은 국부(國富)가 국외로 유출된 탓인데 농업 기술의 퇴보에서 말미암은 것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 소비 증가가 생산 증대로 이어지는 법인데 허비를 줄인다며 자칫 소비를 억제하는 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잘못이다.
- 민생 안정을 위해서는 우선 백성들 간의 상호 부조(扶助)를 장려해야 하는데 국가가 성급하게 개입하는 것은 잘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