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문
다윈 이전의 시대에는 따개비를 연체동물에 속하는 삿갓조개류와 계통상 가깝다고 생각했다. 따개비는 해안가 바위의 부착 생물로 패각을 가지며 작은 분화구 모양을 띠고 있어 외견상 삿갓조개류와 유사하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따개비가 절지동물 중 게, 새우와 계통상 가까운 것으로 보고 있다. 조류의 경우에도 깃털과 날개의 존재, 이빨의 부재 등 파충류와는 외형상 극명한 차이가 있어 계통상 거리가 먼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최근의 계통분류학적 연구 결과들은 가슴쇄골이 작고 두 발로 뛰어다녔던 공룡의 일족으로부터 조류가 진화했다는 파충류 기원설을 지지하고 있다.
이와 같이 생물의 계통유연관계가 바뀐 예들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변화는 주로 계통수(系統樹) 작성 시 이용되는 자료의 종류와 계통수 작성법의 차이에 기인한다. 인접 학문의 발전에 힘입어 분자 정보나 초미세 구조와 같은 새로운 정보들이 추가되면서 계통수 작성 시 이용되는 자료가 양적으로 풍부해지고 질적으로 향상되었다. 더불어 새로운 계통수 작성법의 개발과 기존 방법의 지속적 개선이 계통유연관계의 변화를 촉발시키는 동인이 되어 왔다.
오늘날 사용되는 계통수 작성법들은 ‘거리 행렬’이나 ‘최대 단순성 원리’, 또는 ‘확률’에 기반을 두고 있다. 수리분류학자들은 분류군 간의 형질 차이를 나타내는 거리 행렬을 이용하여 계통수를 작성한다. 이들은 관찰된 모든 분류학적 형질을 이용하며, 주관성과 임의성을 배제하기 위해 수리적 기법을 도입하여 사용한다. 계통수 작성을 위해 먼저 분류군 간 형질 비교표(〈표 1〉)를 만들고, 분류군 간 형질 차이를 측정한다. 분류군 A와 B 사이는 조사된 5개의 형질 중 2개의 형질이 다르므로 둘 사이의 거리는 2/5, 즉 0.4가 되고, A와 C 사이, B와 C 사이의 거리는 각각 4/5로서 0.8이 된다. 이 중 가장 작은 거리 값을 갖는 A와 B를 먼저 묶어 준다(〈그림 1〉). 이어서 묶인 A와 B를 하나의 분류군 A-B로 간주하고 거리를 다시 계산한다. 이때 A-B와 C 사이의 거리는 A와 C 사이 거리와 B와 C 사이 거리의 산술 평균값인 0.8이 된다. 네 종 이상의 분류군을 대상으로 할 경우 이 단계에서 여러 개의 거리 값이 나오므로 가장 작은 거리 값을 찾아 해당 분류군을 묶어 주어야 하지만, 이 예에서는 값이 하나이므로 C를 A-B에 묶어 주면 된다(〈그림 2〉).
〈표 1〉 세 분류군 간 형질 비교표
| 분류군\형질 | 1 | 2 | 3 | 4 | 5 |
|:---:|:---:|:---:|:---:|:---:|:---:|
| A | - | - | - | - | - |
| B | - | + | + | - | - |
| C | + | - | + | + | + |
(- : 해당 형질 없음, + : 해당 형질 있음)
한편, 가장 단순한 것이 최선이라는 최대 단순성 원리에 근거해 계통수를 작성하는 분기론자들은 두 분류군 이상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파생형질, 즉 공유파생형질만을 계통수 작성에 이용한다. 원시형질이나 단 하나의 분류군에서만 나타나는 파생형질인 자가파생형질은 타 분류군과의 유연관계 규명에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 어떤 형질이 파생형질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계통진화학적 정보가 필요하다. 곤충의 예에서, 화석에 나타난 초기 곤충은 날개가 없었는데 진화 과정에서 날개가 출현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만 ‘날개 없음’이 원시형질이고 ‘날개 있음’이 파생형질임을 알 수 있다. 이때 ‘날개 있음’은 날개 있는 곤충들을 한 그룹으로 묶어 주는 공유파생형질이 될 수 있다(〈그림 3〉(A) 참조). 〈그림 3〉과 같이 세 종의 곤충에 대한 계통수 작성 시 서로 다른 세 종류의 계통수가 가능한데, 최대 단순성 원리에 근거하여 단 한 번의 날개 출현 사건만을 가정하는 〈그림 3〉(A)가 두 번의 가정을 필요로 하는 〈그림 3〉(B)나 〈그림 3〉(C)보다 더 신뢰할 만한 계통수로 간주된다.
확률 기반의 계통수 작성법은 전술한 두 방법에 비해 신뢰성 면에서 상대적 우위를 가진다. 이 방법은 엄청난 계산 시간이 소요되어 대량의 자료 분석에서는 그 이용에 한계를 드러내는 단점이 있으나 컴퓨터 계산 능력이 향상되면서 점차 그 유용성이 증대되고 있다.
현재 계통분류학자들은 지구 상의 모든 생물을 아우르는 거대 계통수 작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따라서 기존에 알려진 계통유연관계는 머지않은 장래에 상당한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생물의 계통유연관계는 고정불변의 사실이 아닌 미완의 가설로서 지금도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