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문
19세기에 독립된 학문으로 출발한 미술사학은 작품의 형식 분석에 몰입하거나 도상해석학을 이용해 작품의 상징을 파악했다. 이러한 작업은 작품의 의미와 조형적 특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선대부터 대가로 평가된 작가들의 배타적 지위를 공고히 하거나 새로운 걸작을 발견하고 재조명하는 데 유용한 이론적 뒷받침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후 미술사 연구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라파엘로의 ㉠〈작은 의자 위의 성모〉(1514)에 등장하는 성모와 아기 예수, 세례자 요한을 기독교적 도상에 따라 이해하고, 그 주제를 담아내는 형식 ― 안정된 구도, 그림에 활력을 주는 삼원색의 대비, 적색과 녹색의 보색 대비 등 ― 의 완벽함을 밝힘으로써 작가와 작품의 미술사적 의의를 서술하는 것이 그 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방식은 현대 미술 작품의 해석과 평가에도 유용한 것일까?
심장이 몸 밖으로 드러난 채 가는 핏줄로 연결되어 있는 두 여인을 그린 프리다 칼로의 ㉡〈2인의 프리다〉(1939)를 살펴보자. 왼편의 여인은 오른손에 가위를 쥔 채 지혈을 하고 있다. 오른편 여인은 한 소년이 그려진 동그란 형태의 작은 물건을 왼손에 쥐고 있는데, 숨긴 듯 그려진 이 소년은 남편 리베라의 모습이다. 전통적인 도상해석학은 이 그림의 의미 파악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한다. 전통적인 성화 속의 피 흘리는 양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17세기 정물화 속의 양초와 해골이 인생의 덧없음으로 해석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관례적인 상징 체계는 이 그림 속의 요소들과는 깊은 관련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석의 난점을 풀기 위해 어떤 미술사학자는 정신분석학의 이론을 빌려와, 칼로가 무의식적으로 남편 리베라를 아버지로 대체하였고, 그런 심리적 과정이 그의 자화상 속에 드러난다고 해석하였다. 기이한 분위기와 생경한 색채로 인해 초현실주의적인 그림으로 주목을 받았던 칼로의 작품은 이와 같은 새로운 해석에 의해 그 가치에 대한 평가가 높아지고 있다.
칼로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현대 미술가들이 과거의 전통적 주제나 상징 체계에 의거해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는 점으로 볼 때, 도상해석학이 한계를 지닌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고상한 주제나 지적 유희를 즐겼던 미술 후원자의 주문에 따라 그림을 그리던 방식에서 벗어나 화가 자신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의지에 따라 그림을 그리게 된 현대 미술의 흐름을 고려한다면 미술사를 바라보는 미술사가들의 태도도 자연히 바뀌어야 했다.
새로운 미술 환경에 맞는 미술사학의 관점과 이론을 모색하는 일군의 이론가들이 1980년대에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그들의 경향은 ‘신미술사학’이라고 불린다. 신미술사학의 대표적인 연구자 중의 한 명인 프리치오시는 탈구조주의 철학에 기초하여, 기존의 미술사학을 지배했던 주도적인 이데올로기, 즉 미술사는 예술적 천재에 대한 찬양과 미적 보편성에 전념해야 한다는 믿음을 반성한다. 한편 다른 이론가들은 기존의 미술사의 주체가 서양 백인 남성이었다는 점과 방법론이 도상해석학과 형식 분석에 제한되었다는 점을 반성한다. 이에 따라 신미술사가들은 여성 미술가, 흑인 미술가 등으로 표상되는 사회 계급, 젠더, 섹슈얼리티라는 다층적 정체성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정신분석학 등 다양한 방법론을 자신의 것으로 적극 수용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과 기준의 다양화는 동시대의 그림뿐 아니라 과거의 미술에 대해서도 새로운 해석과 가치 평가를 가능케 한다.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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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려질 당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젠틸레스키의 ㉢〈유디트〉(1620)가 재평가되는 것도 신미술사학의 방법론을 통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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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디트’는 서양 미술사에 많이 등장하는 주제 중의 하나인데, 이스라엘을 침공한 아시리아 장수 홀로페르네스, 나라를 지키기 위해 그의 목을 베는 젊은 미망인 유디트와 하녀가 등장한다. 젠틸레스키의 그림에서는 죽음에 저항하는 남자와 목적을 이루려는 두 여인의 동작과 표정이 명암과 색채 대비를 통해 사실적으로 생생하게 표현되었다. 가치 있는 주제를 극적인 방식으로 표현했음에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이 작품은 페미니즘의 관점을 통해 폭넓게 이해되었고 그에 따라 새로운 평가를 받게 되었다. 이처럼 신미술사학은 미술을 역사와 사회 상황 같은 다양한 맥락과 굳게 연대시킴으로써 우리에게 풍요로운 작품 해석과 평가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15. 〈보기〉를 통해 [A]에 대해 추론할 때,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서양 미술사에서 ‘유디트’는 연약한 여인이 나라를 구한다는 교훈적인 측면과 함께, 유디트의 아름다움이 주는 시각적 즐거움, 미색의 탐닉이 불러올 파국에 대한 경계라는 측면에서 남성 미술 애호가들이 즐겨 주문한 주제였다. 수많은 화가들이 그린 ‘유디트’ 중에서 카라바조의 〈유디트〉(1598)가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 화가는 이 그림에서 유디트를 소녀로 묘사하여 그 아름다움을 부각시키고 있다.
여성은 남성의 벗은 몸을 볼 수 없다는 당시 사회 통념 때문에 정규 미술 학교 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젠틸레스키는 타고난 재능을 거의 독학에 가까운 노력을 통해 발현할 수 있었다. 그녀는 카라바조의 〈유디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비현실적인 자세와 구도를 비판하며 보다 현장감 넘치는 그림을 그렸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젠틸레스키의 〈유디트〉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화가 자신이며, 그녀를 겁탈한 개인교사가 홀로페르네스로 그려졌다고 한다.
- 당시의 미술 애호가들은 젠틸레스키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 이미지가 이상화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저평가했을 것이다.
- 당시 미술계는 남성의 벗은 몸을 볼 수 없었던 젠틸레스키가 홀로페르네스의 신체 표현에 서툴렀기 때문에 저평가했을 것이다.
- 당시 미술계는 정규 미술 교육도 받지 못한 여성인 젠틸레스키가 주목받던 선배 화가 카라바조의 방식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저평가했을 것이다.
- 페미니스트 연구자들은 젠틸레스키의 그림으로부터 능동적인 여성상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높이 평가했을 것이다.
- 페미니즘적 미술 비평은 젠틸레스키의 그림이 여성 화가의 자화상이고 그녀의 아픈 상처가 이 그림의 창작 동인이 되었다는 점 때문에 새롭게 평가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