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문
1789년 프랑스 혁명 초기에 제정된 중간집단 금지에 관한 법들은 개인의 활동에 장애가 된다고 판단되는 동업조합, 상인조합은 물론 정당 활동까지 금지함으로써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주체로서의 개인만을 사회에 남겼다. 루소는 이미 국가에서 특수의지를 표명하는 부분 집단의 존재를 제거하고 각개의 시민들이 자신의 의견만을 말하게 함으로써 일반의지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는 이성을 가진 개인의 합리적인 사회적 행위를 통해 일반 이익을 실현하는 국가 권력을 확립하고자 한 것이었다. 하지만 과연 모든 개인이 이성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가 있었고, 공공질서의 문제에 있어서 개인들의 산술적 합으로서의 ‘수’가 이성적인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현실적인 보장도 없었다. 이러한 ‘이성’과 ‘수’의 긴장은 혁명 시기와 이후 프랑스 정치사에서 ‘이성’에 의해 표상되는 자유주의와 ‘수’에 의해 표상되는 민주주의의 갈등으로 표현되었다.
우선 혁명 시기 ‘수’에 대한 ‘이성’의 우위가 드러난 대표적인 예는 ‘수’의 정치적 권리에 대한 제한이었다. 자유주의자들은 선거를 개인의 ‘권리’가 아니라 공적인 ‘기능’으로 간주하였다. 선거권의 제한은 공적인 결정을 합리화하고 민주주의라는 ‘수’가 갖는 위험을 제거하기 위한 방안으로 정당화되었다. 그들에게 선거는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대표자를 뽑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의지를 해석하고 일반 이익을 잘 인식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들을 지명하는 행위였다.
혁명이 급진화되면서 ‘수’로 표상되는 인민의 민주주의적 실천이 등장하였다. 외국과의 혁명 전쟁이 시작되면서 조국의 위기가 선언되고, 공적 영역에서 배제되었던 상퀼로트들도 국민방위대에 들어갔다. 나아가 그들은 자신들의 대표자를 선출하여 그들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으며, 자신들이 승인하지 않은 법을 거부하고 주권을 직접 행사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상퀼로트들의 힘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로베스피에르는 인민의 민주주의적 실천을 ‘덕성’의 이름으로 제한하였다.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는 공화국의 안전을 확보하고 인민이 공적 영역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덕성’을 필요조건으로 제시하면서 공화국의 제도 안에서만 인민의 정치적 실천이 이루어지도록 한정하였다. 덕성이란 ‘조국과 법에 대한 사랑이며, 개인적 이익을 일반 이익에 종속시키는 숭고한 자기 희생’이었다. 덕성에 대한 강조는 민주주의의 제한과 대표의 절대화 ― 대표와 국민의 일치를 통한 대표의 절대 권력 ― 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1789년 이후 19세기 동안 ‘이성’, ‘수’ 그리고 ‘덕성’ 사이의 긴장 속에서 프랑스는 정치적 혼란의 위협에 시달렸다. 중간집단의 부재를 그 주요 원인으로 들었던 토크빌이 지적했듯이, 민주주의는 혁명을 통해 절대왕정을 무너뜨렸지만 동시에 중앙집권화에 기반한 거대 권력에 의존함으로써 ‘이성’과 ‘덕성’이 약화되어 전제정으로 귀결되었다. 민주주의자이면서 동시에 귀족정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있었던 토크빌은 귀족정 시대 중간집단의 역할에 다시 주목하였다. 혁명과 함께 그것들이 사라지면서 개인들은 시민적 덕성을 함양할 기회를 박탈당했고, 국가는 그 권력을 제어할 견제 세력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토크빌은 ㉠++민주주의 시대 중간집단++이 정치적 자유가 실현될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시민적 덕성을 함양하고 권력에 대한 견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갈등을 해소하면서 프랑스 혁명을 종결지었던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서 제3공화국은 새로운 사회적 필요에서 중간집단을 다시 허용하였다. 뒤르켕은 분업이 급속하게 진행된 당시 사회에서 직업적 도덕을 형성하고 나아가 국가와 개인 사이의 의사소통을 위한 대표의 기능을 수행하는 독자적인 직업 집단이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프랑스 혁명이 발생한 후 백여 년의 시간을 거치면서 중간집단이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은 것이다. 또한 19세기 말 정착되기 시작한 정당 체제는 새로운 엘리트 충원 구조이자 여론의 형성자로서 자리 매김 된다. 다양한 이데올로기적 색채를 드러내는 정당 체제는 시민과 국가권력을 매개하는 역할을 수행하였고, 그것은 민주주의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민주주의를 통제하는 방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