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스승과 제자의 대화에 대한 평가로 타당하지 않은 것은?
제자₁:왜 도덕적으로 살아야 합니까? 들키지 않고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으면 이기적이고 비도덕적인 일을 서슴지 않고 하는 것이 더 이득이지 않습니까?
스승₁:그런 식으로 성공하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갖출 수 없는 엄청난 능력이 필요해. 신이 아니고선 성인이나 지킬 수 있는 원칙들을 따르기 어려운 것처럼, 악마가 아니고선 극단적 범죄성을 요구하는 원칙들을 따르기는 어려워. ‘항상 양심의 가책 없이 나쁜 일을 잘 해내는’ 이런 극단적 범죄성이 알다시피 사람들에겐 부족하잖아.
제자₂:그럼 대개는 규범을 따르다가 감시와 벌을 피할 수 있을 때만 어기는 쪽으로 원칙을 세우면 되지 않을까요?
스승₂:사람들의 능력을 생각해 볼 때, 똑바로 사는 척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냥 똑바로 사는 거야. 그리고 하나 더 말하면, 인류는 이미 가식과 범죄가 남는 장사가 못 되게끔 사회를 발전시켜 놓았어.
제자₃:양심과는 거리가 먼 사업에서 큰돈을 번 사람들은요?
스승₃:그런 식으로 번 돈은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해. 또 그만한 능력으로 돈벌이는 덜 되지만 건전한 직업을 택했으면 더 행복했을 거야.
제자₄:부정하게 돈을 벌면서도 행복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스승₄:그런 경우는 드물 수밖에 없어. ‘그냥 똑바로 산다’는 건 습관을 넘어 그런 성향을 갖는다는 것, 즉 규범에 맞을 때 기분이 좋아지고 어긋날 때 기분이 나빠지는 감정까지도 갖는다는 것을 뜻하거든. 이런 성향에 기반을 둔 상호 협조와 애정이 우리에게 없다면 우리가 삶에서 기대하는 따뜻함과 행복은 물거품이 되고 말 거야.
제자₅:성향까지 갖추라는 것은 지나치지 않나요? 그런 성향은 결국 자신의 자잘한 잘못도 혐오하게 하고 자기 증오로 발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자기 증오까지 안 가도록 잘못에 대한 반감을 완화하다 보면 성향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스승₅:균형이 중요하지. 모든 일상적인 사태들에서 지키기에는 충분하면서 신경쇠약에 걸릴 정도는 아닐 만큼만 나쁜 행위에 반감을 동반하도록 해야 해.
- 테레사 수녀처럼 자기희생과 헌신에서 오히려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스승₁의 주장을 약화시키지 않는다.
- 가끔씩 양심의 가책 없이 나쁜 일을 잘 해내는 것도 보통 사람들은 수행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면 스승₂의 설득력은 높아진다.
- 돈만 많으면 행복이 보장된다거나, 행복에는 상당한 돈이 필요하고 상당한 돈을 위해서는 그만큼의 비도덕적 행위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보이면 스승₃이 반박된다.
- 비도덕적으로 많은 돈을 번 사람이 이후 자기 재산을 좋은 일에 흔쾌히 쓰면서 비로소 행복을 찾은 경우가 있다면 스승₄는 약화된다.
- 스승₅가 제자₅에 대한 충분한 답이 되려면 자기 증오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도덕적 성향을 유지할 수 있는 중도의 길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