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문
조선 건국 무렵 태조는 전국을 330여 개의 군현으로 편제하고 중앙에서 직접 수령을 파견하면서 그 직급을 6품 참상관으로 높여 자질과 권위를 확보하려 하였다. 이는 근무 연한을 채우면 7~9품의 관직에 진출할 수 있었던 서울의 이전(吏典)들이 지방 수령으로 진출하는 것을 봉쇄하는 조처였다. 이에 따라 부족한 수령 자원은 6품 이상의 관원에게 천거하게 하였고 관찰사에게는 지방관 평가뿐 아니라 지방 사족 출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적임자 발탁 권한을 주었다. 이렇게 하여 30개월 임기로 공명(公明), 염근(廉謹) 등 덕행 항목에 우선권을 두어 평가하는 지방 수령 평가·임용 제도가 시행되었다.
태종이 즉위한 이후 수령의 업무가 표준화되었다. 이때 수령 7사가 제정되어 인구 증가와 농업 생산성 향상, 공정한 조세 부과, 학교 발전, 아전 농간 차단 등의 업무가 규정되었다. 일 년에 두 번 정기 평가가 실시되었고, 5회의 평가에서 2회 '중' 평가를 받으면 파면되는 원칙도 마련되었다. 수령의 업무는 수치화된 결과와 실적만으로 평가되었고, 이후 이러한 원칙은 경국대전에 명문화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강화되었다.
한편 수령들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 덕행에 의한 평가와 관찰사에 의한 현지 발탁은 폐지되었다. 그 대신 근무 기한을 채운 서울의 이전 중 10% 정도의 인원을 선발하여 잡직에 임명될 수 있게 하고, 그 임기가 만료되면 종6품의 수령직 대기자가 되도록 하였다. 이전 출신의 수령 진출을 통제하는 장치였지만, 한편으로 행정 능력을 갖춘 이전 출신자에게 수령 진출 기회를 부여한 것이었다.
세종에 이르러서는 수령의 지방 실정 파악을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수령의 잦은 교체가 문제로 대두되었다. 그에 따라 수령의 임기가 60개월로 늘었으며 현지민의 수령 고소도 금지되었다. 임기 전 사임한 수령이 남은 임기 동안 다른 관직에 서용될 수 없게 하는 조치도 시행되었다. 자질 있는 수령의 확보를 위해 수령직 대기자인 이전 및 잡직자를 대상으로 수령취재법이 시행되어 사서와 삼경, 법전을 시험 보게 하였다. 또한 무관이 배정되었던 약 80여 곳의 수령 자리 중 국방상 중요한 50여 곳을 제외한 지역에는 행정 능력과 인품을 고려하도록 하였다.
평가 방식도 보완되었는데, 10회로 늘어난 평가 중 3~5회 '상'을 받으면 등급을 올려 주고, 5회 '중'을 받더라도 관품을 유지하게 하였으며, 연속으로 '중'을 받은 경우라도 10회의 평가를 받게 하여 임기를 채우도록 조처하였다. 이는 평가 방식을 포상 위주로 변경하여 수령의 업무 의욕을 고취하고 부정을 방지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방 수령의 장기 근무로 인하여 지방 수령의 자질 저하와 경·외관(京外官)의 분화라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이는 조정이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기 때문에, 공신 및 대신의 자제를 수령으로 파견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령직이 과거를 통해 문반직에 진출하지 못한 세력가 자제의 관직 진출로로 활용되면서 수령직의 열등화는 오히려 더욱 분명해졌다. ㉠ 문과 출신의 우수한 인재를 수령으로 파견하는 조치가 단행된 것은 경·외관의 분화를 보완하기 위한 또 다른 방안이었다. 분화 현상 자체를 막을 수는 없지만, 우수한 자원을 일정 기간 외직으로 파견함으로써 중요 거점에라도 유능한 수령을 확보하려는 의도였다. 이들은 수령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을 뿐 아니라, 통상적으로 대간을 역임하기도 하였기에 주변의 수령들에 대한 비리 예방 효과가 있었다. 재판과 같은 전문적 업무나 대규모 토목 공사 등이 발생할 때, 이들은 관찰사가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자원이 되었다.
지방 수령의 장기 근무는 심각한 적체 현상을 낳기도 했다. 이에 따라 세조는 이전의 제도를 계승하면서도 수령의 임기는 30개월로 단축하였다. 그와 함께 우수한 평가를 받은 수령을 파격적으로 승진시키는 한편, 불법 행위를 한 수령은 즉각 징계하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이러한 평가 방식은 일시적인 효과는 기대할 수 있어도 안정적인 관직 운영 방식으로 정착되지 못했다.
성종 때 경국대전이 편찬되면서 관련 사항들이 명확히 정비되었다. 수령 7사가 규정으로 자리 잡고, 근무 기간도 60개월로 환원되었다. 평가에서 10회 '상'이면 품계를 올려 주고, 3회 '중'이면 파직, 2회 '중'은 녹봉이 없는 관직으로 임명하도록 명시하였다. 또한 4품의 관직에 승진하려면 외관직을 거쳐야 한다고 규정하여 서울과 지방 관원의 교류 원칙도 분명히 하였다. 이들 규정은 지방 세력가를 억제하면서 백성을 안집(安集)시키고 중앙의 덕화(德化)를 관철하고자 한 오랜 노력의 산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