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다음의 가설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볼 수 없는 것은?
다이아몬드(J. Diamond)는 인류 역사를 인간의 진화와 생태학의 맥락에서 설명하려고 했다. 그는 인간 사회의 운명이 우연적 요인이나 인종적 요인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성과물을 채택하려는 인간의 충동에서 나오는 것이며, 이 충동은 지리 및 생태계의 변화와 결합되어 있다는 가설을 제시하였다.
다이아몬드에 따르면, 1500년 경 유럽에서 발달된 과학 기술과 정치 조직이 현대 세계의 불평등을 낳았지만,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 불평등은 각 대륙의 발전 속도가 다른 것에서 유래했다. 그리고 각 대륙의 발전 속도의 이러한 차이를 가져온 것은 궁극적으로 지리 및 생태적 환경이었다. 더 나아가 그는 지리 및 생태적 요인이 인간 사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비교적 자세히 설명하였다.
다이아몬드는 세계 최대의 대륙인 유라시아가 각 지역의 혁신적 성과물이 모이는 최대의 집결지라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상인, 체류자, 정복자들은 그것을 수집해 널리 전파시켰고, 교통 요충지에는 인구가 집중됨으로써 도시가 건설되어 다양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발명과 확산을 가져왔다. 또한 유라시아는 남북으로 뻗은 아프리카나 남북 아메리카와 달리 동서로 뻗어 있어서, 한 지역에서 이용하는 작물과 가축이 비슷한 위도, 비슷한 기후의 다른 지역으로 쉽게 전파될 수 있었다.
- 애팔래치아, 스코틀랜드 등 고립된 고지대의 문화는 주위 지역의 문화에 비해 수백 년 뒤처진 채로 남게 되었다.
- 유라시아의 교역로 상에 위치했던 대도시인 바그다드와 장안에서는 다양한 문화가 융합되어 수준 높은 문화가 발달하였다.
- 호주, 아프리카, 남북 아메리카의 섬 주민들은 몇 가지 토착 기술로 연명해야 했고, 그 결과 정복자들에 대항할 능력을 키우지 못했다.
- 안데스에서 사육하던 라마와 알파카는 북쪽의 멕시코로 건너가지 못했고, 그래서 마야와 아즈텍 문명은 짐을 나르는 짐승이 없는 문명으로 남았다.
- 유럽인들은 우수한 문명을 발달시킬 수 있는 교육 체제와 두뇌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소수의 에스파냐 인들이 대서양을 건너 잉카와 아즈텍 제국을 멸망시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