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법서약제와 양심의 자유
헌재 2002. 4. 25. 98헌마 425
판시사항
국가보안법위반 및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 수형자의 가석방 결정시 준법서약서를 제출하도록 한 가석방심사등에관한규칙 제14조가 준법서약의 내용상 서약자의 양심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인지 여부
결정요지
1.내용상 단순히 국법질서나 헌법체제를 준수하겠다는 취지의 서약을 할 것을 요구하는 이 사건 준법서약은 국민이 부담하는 일반적 의무를 장래를 향하여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며, 어떠한 가정적 혹은 실제적 상황하에서 특정의 사유(思惟)를 하거나 특별한 행동을 할 것을 새로이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사건 준법서약은 어떤 구체적이거나 적극적인 내용을 담지 않은 채 단순한 헌법적 의무의 확인ㆍ서약에 불과하다 할 것이어서 양심의 영역을 건드리는 것이 아니다.
2.양심의 자유는 내심에서 우러나오는 윤리적 확신과 이에 반하는 외부적 법질서의 요구가 서로 회피할 수 없는 상태로 충돌할 때에만 침해될 수 있다. 그러므로 당해 실정법이 특정의 행위를 금지하거나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특별한 혜택을 부여하거나 권고 내지 허용하고 있는 데에 불과하다면, 수범자는 수혜를 스스로 포기하거나 권고를 거부함으로써 법질서와 충돌하지 아니한 채 자신의 양심을 유지, 보존할 수 있으므로 양심의 자유에 대한 침해가 된다 할 수 없다.
이 사건의 경우, 가석방심사등에관한규칙 제14조에 의하여 준법서약서의 제출이 반드시 법적으로 강제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당해 수형자는 가석방심사위원회의 판단에 따라 준법서약서의 제출을 요구받았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의사에 의하여 준법서약서의 제출을 거부할 수 있다. 또한 가석방은 행형기관의 교정정책 혹은 형사정책적 판단에 따라 수형자에게 주는 은혜적 조치일 뿐이고 수형자에게 주어지는 권리가 아니어서, 준법서약서의 제출을 거부하는 당해 수형자는 결국 위 규칙조항에 의하여 가석방의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될 것이지만, 단지 그것뿐이며 더 이상 법적 지위가 불안해지거나 법적 상태가 악화되지 아니한다.
이와 같이 위 규칙조항은 내용상 당해 수형자에게 하등의 법적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아니며 이행강제나 처벌 또는 법적 불이익의 부과 등 방법에 의하여 준법서약을 강제하고 있는 것이 아니므로 당해 수형자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
3.남북한의 대결상황에서 북한은 여전히 대남혁명전략을 추구하며 대한민국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으므로 대한민국으로서는 국가의 존립 보장을 위하여 북한의 대남혁명전략에 방어적으로 대처하지 아니할 수 없다. 또한 북한에 연계하거나 혹은 자발적 의사에 의하여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하거나 붕괴시키려는 세력의 위법행위는 그 행위의 성격상 주로 국가보안법위반죄 또는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죄를 통하여 처단하여온 것이 현재 우리의 법적 현실이라고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당해 수형자들에게 그 가석방 여부를 심사함에 있어서 다른 범죄의 수형자들에게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심사방법을 공히 적용하는 외에, 국민의 일반적 의무인 ‘국법질서 준수의 확인절차’를 더 거치도록 하는 것은 당해 수형자들이 지니는 차별적 상황을 합리적으로 감안한 것으로서 그 정책수단으로서의 적합성이 인정된다고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준법서약제는 당해 수형자의 타 수형자에 대한 차별취급의 목적이 분명하고 비중이 큼에 비하여, 차별취급의 수단은 기본권침해의 문제가 없는 국민의 일반적 의무사항의 확인 내지 서약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므로 그 차별취급의 비례성이 유지되고 있음이 명백하다고 할 것이고, 결국 이 사건 규칙조항은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 위배되지 아니한다.
재판관 김효종, 재판관 주선회의 위헌의견
1.헌법이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이유와 그 보호범위
헌법재판소는 양심의 자유의 보호범위에 관하여, 헌법 제19조에서 말하는 양심이란, 개인의 인격형성에 관계되는 내심에 있어서의 가치적ㆍ윤리적 판단뿐만 아니라 세계관ㆍ인생관ㆍ주의ㆍ신조 등을 포함한다고 한 바 있다. 그런데 다수의견은 이러한 선례를 고려하지 않고 양심의 범위를 도덕적 양심에 국한시키면서, 개인의 윤리적 정체성에 관한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에 한정시켜 이 사건을 판단하고 있는바, 이는 명백히 종래의 판례취지를 축소 내지 변경하는 것이다.
또한 다수의견은 더 나아가 양심의 자유의 보호범위를 첫째, 둘째, 셋째로 나누어 개념적으로 규정하고 있는바, 판례가 아직 집적되어 있지 않음에도 그러한 연역적 개념위주로 형식적 판단을 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의 보호영역을 넓히기보다는 이를 제약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 문제점이 있다.
2.준법서약서 제출요구가 양심의 자유의 보호범위에 속하는지 여부
가.다수의견은 이 사건 준법서약은 "단순한 헌법적 의무의 확인ㆍ서약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어서 양심의 영역을 건드리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다. 일반인을 상대로 한 준법서약에 관한 한 그러한 판단에 이의가 없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문제된 준법서약서제도가 국가보안법위반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수감중인 폭력적 방법에 의한 국가전복을 도모하려는 공산주의자에 대한 것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폭력적 방법으로 정부를 전복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보장되어 있지 않지만, 그러한 사고가 개인의 내면에 머무는 한 이를 고백하게 하거나 변경하게 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나.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아무리 자유민주주의의 반대자라 하더라도, 그 표현된 행위가 공익에 적대적일 경우에만 정당한 제재를 가할 수 있다. 국가는 폭력적인 국가전복을 시도하는 극단적 공산주의자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지만, 한편 공산주의보다도 인권보장에 있어 우월한 자유민주주의 체제 하에서는, 그들의 "행위"를 법적으로 처벌할 수는 있어도, 그들로 하여금 여하한 직ㆍ간접적인 강제수단을 동원하여 자신의 신념을 번복하게 하거나, 자신의 신념과 어긋나게 대한민국 법의 준수의사를 강요하거나 고백시키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다.준법서약서제도는 과거의 사상전향서제도와는 형식적으로 다른 형태로서 국법질서를 준수하겠다는 서약서이지만, 그 실질에 있어서는 오랜 기간 공산주의에 대한 신조를 지닌 국가보안법 위반자 등으로 하여금 그러한 신조를 변경하겠다는 것을 표명하게 하고, 그럼으로써 같은 신조를 지닌 자들과 격리하게 되는 효과를 도모하는 점에서 유사하다.
라.설사 다수의견의 판시와 같은 양심 개념을 차용한다고 하더라도, 양심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와 같은 기본권은 국가에 의한 중요한 혜택의 배제시에도 제한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무엇이 그러한 혜택에 포함될 것인지는 개별적으로 논해야 할 것이나, 적어도 장기수에 있어 가석방의 배제는 그의 일생 일대의 중요한 문제로서 이에 포함시켜 보아야 할 문제이다.
마.그러므로 준법서약서제도는 헌법 제19조의 양심의 자유의 보호영역 내에 포섭되어야 마땅하다.
3. 준법서약서제도의 양심의 자유 침해 여부
가.준법서약서제도는 "개인의 세계관ㆍ인생관ㆍ주의ㆍ신조 등이나 내심에 있어서의 윤리적 판단"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내심의 자유를 직접 제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비록 준법서약서라는 ‘표현된 행위’가 매개가 되지만 이는, 국가가 개인의 내심의 신조를 사실상 강요하여 고백시키게 한다는 점에서, 양심실현 행위의 측면이라기 보다는, 내심의 신조를 사실상 강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나.준법서약서제도는 어느 법률에서도 이를 직접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또한 이를 하위법령에 위임하는 근거규정도 없다. 그러므로 더 나아가 볼 것 없이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도록 한 헌법 제37조 제2항에 위반된다.
다.설사 이를 내심의 자유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양심 "실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으로 보는 경우에도 이 사건 규칙은 비례의 원칙을 준수한 것이라 볼 수 없다.
이 사건 규칙이 수형자의 재범 가능성을 판단하기 위하여 향후의 준법의사를 파악한다는 관점에서 입법목적상 정당하다고 하더라도, 준법서약서를 제출하였다고 하여 향후 재범의 가능성이 없는 것인지, 제출하지 않은 경우 가석방하면 재범의 위험성이 높은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는 점에서, 이 사건 규칙이 입법목적 달성을 위한 효과적인 방법인 것인지는 의문이 있다.
한편 재범의 가능성에 대한 판단이 제도의 목적이라면 면접 등 다른 일반 수형자의 가석방 심사 방법으로도 충분히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음에도, 이 사건 규칙은 필요 이상으로 양심의 자유를 제한한다.
나아가 준법서약서제도로 인하여 개인이 겪게 되는 양심상의 갈등, 즉 가석방을 얻어내기 위하여 자신의 근본적 신조를 변경하겠다는 표현을 하거나 혹은 침묵을 통해 신조의 불변을 나타내는 것에 대한 내면적 갈등의 심각성은, 재범의 위험성의 한 판단자료라는 공익과 대비시킬 때, 법익간의 균형성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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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법요건에 관한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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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판 단
가. 적법요건에 관한 판단
(1) 권리침해의 직접성
법령조항 자체가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수 있으려면 그 조항에 의하여 구체적 집행행위를 기다리지 아니하고 직접, 현재, 자기의 기본권을 침해받아야 하는 것을 요건으로 하고, 여기서 말하는 기본권침해의 직접성이란 집행행위에 의하지 아니하고 법령 그 자체에 의하여 자유의 제한, 의무의 부과, 권리 또는 법적 지위의 박탈이 생긴 경우를 뜻한다(헌재 1999. 11. 25. 98헌마55, 판례집 11-2, 593, 605). 그러나 구체적 집행행위가 존재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언제나 반드시 법령 자체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청구의 적법성이 부인되는 것은 아니다. 즉, 집행행위가 존재하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그 집행행위를 대상으로 하는 구제절차가 없거나 구제절차가 있다고 하더라도 권리구제의 가능성이 없고 다만 기본권침해를 당한 청구인에게 불필요한 우회절차를 강요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 경우로서 당해 법령에 대한 전제관련성이 확실하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당해 법령을 직접 헌법소원의 대상으로 할 수 있다(헌재 1997. 8. 21. 96헌마48, 판례집 9-2, 295, 304; 헌재 1999. 11. 25. 98헌마55, 판례집 11-2, 593, 606).
이 사건의 경우 가석방심사위원회는 먼저 형법 제72조 제1항의 기간을 경과한 국가보안법위반,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 등의 수형자중에서 행형성적 등을 심사한 결과 가석방 적격판정이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수형자를 선정하여 준법서약서의 제출을 요구하게 될 것이므로 이 사건 규칙조항은 가석방심사위원회의 준법서약서 제출요구가 있어야만 비로소 당해 수형자에게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석방심사위원회의 준법서약서 제출요구는 단지 가석방 적격여부를 판정하기 전에 그 정상자료를 수집하는 중간적 조치일 뿐, 그 대상자가 반드시 이에 응하도록 강제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준법서약서를 제출하였다고 하여 그 사유만으로 가석방이 당연히 되는 것도 아니다. 즉 당해 수형자는 준법서약서의 제출요구조치가 아니라 가석방여부에 대한 법무부장관의 종국적 판정처분에 의하여 비로소 그 이익에 영향을 받게 된다. 결국 가석방심사위원회의 준법서약서 제출요구는 당해 수형자에게 준법서약서의 제출을 권유 내지 유도하는 권고적 성격의 중간적 조치에 불과하여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는 독립한 행정처분으로서의 외형을 갖춘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청구인들이 이 사건 심판청구 전에 가석방심사위원회의 준법서약서 제출요구행위를 대상으로 한 행정소송 등 사전구제절차를 통하여 권리구제를 받을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할 것이어서 동 구제절차를 이행하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기본권침해의 직접성이 없다고 할 수 없으며, 따라서 이 사건 심판청구들은 권리침해의 직접성의 측면에서는 모두 적법하다.
(2) 권리보호의 이익
98헌마425 사건의 청구인은 1999. 2. 25.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으며, 99헌마170 사건의 청구인은 1999. 8. 15.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 또 99헌마498 사건의 청구인들도 모두 석방되었는바, 청구인 이○철, 정○재, 윤○준, 전○은, 배○균, 양○훈, 장○상, 조○병, 김○학, 노○조, 박○서, 이○열, 김○준, 김○수, 김○희, 김○석, 장○섭, 민○우, 박○은 각 1999. 8. 15. 형집행정지로, 청구인 김○정은 1999. 12. 31. 형집행정지로, 청구인 최○주는 2000. 2. 29. 형기종료로, 청구인 이□철, 나○영, 정○홍, 이○구, 김○는 각 2000. 8. 15. 형집행정지로 각 석방되었고, 청구인 강○원, 정○찬, 정○기도 2001. 7. 13.에서 8. 3.까지 사이에 형기종료로 모두 출소하였다.
이렇게 청구인들이 모두 석방된 이상, 앞으로 더 이상 준법서약서의 제출을 조건으로 한 가석방여부가 문제될 리가 없으며 따라서 이 사건 심판청구가 인용된다고 하더라도 청구인들의 주관적 권리구제에는 도움이 되지 아니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헌법소원은 주관적 권리구제 뿐만 아니라 객관적인 헌법질서보장의 기능도 겸하고 있으므로 가사 청구인들의 주관적 권리구제에는 도움이 되지 아니한다 하더라도 같은 유형의 침해행위가 앞으로도 반복될 위험이 있고, 헌법질서의 수호ㆍ유지를 위하여 그에 대한 헌법적 해명이 긴요한 사항에 대하여는 심판청구의 이익을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헌법재판소 1991. 7. 8. 89헌마181, 판례집 3, 356, 367; 1992. 1. 28. 91헌마111, 판례집 4, 51, 56-57). 이 사건 헌법소원에 있어서 준법서약서 제출요구는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것으로 보여지고, 그에 대한 헌법적 정당성 여부의 해명은 헌법질서의 수호를 위하여 매우 긴요한 사항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므로 이 사건 심판청구의 이익은 여전히 존재한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