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상의 혼인빙자간음죄 사건
헌재 2009. 11. 26. 2008헌바 58
판시사항
형법 제304조의 혼인빙자간음죄의 위헌 여부
결정요지
형법 제304조 중 “혼인을 빙자하여 음행의 상습없는 부녀를 기망하여 간음한 자”부분이 헌법 제37조 제2항의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여 남성의 성적자기결정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 는 것으로 헌법에 위반된다.
우선 이 사건 법률조항은 남성의 성적자기결정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제한한다. 남성의 성적자기결정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역시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필요한 경우에는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겠지만 그 제한이 한계를 넘어 헌법 제37조 제2항에서 정하고 있는 과잉금지원칙 에 위배되어서는 안되므로 동 기본권제한에 대한 위헌성을 판단함에 있어서도 엄격한 비례심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 사건 법률조항의 경우 우선 형벌규정을 통하여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에는 그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는다. 남성이 해악적 문제를 수반하지 않는 방법으로 여성을 유혹하는 성적 행위에 대해서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억제되어야 한다. 남성의 여성에 대한 유혹의 방법은 남성의 내밀한 성적자기결정권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며, 또한 애정행위는 그 속성상 과장이 수반되게 마련 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 형법이 혼전 성관계를 처벌대상으로 하지 않고 있는 이상, 혼전 성관 계의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통상적 유도행위 또한 처벌하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여성이 혼전 성관 계를 요구하는 상대방 남자와 성관계를 가질 것인가의 여부를 스스로 결정한 후 자신의 결정이 착오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상대방 남성의 처벌을 요구하는 것은 여성 스스로가 자신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부인하는 행위이다. 또한 혼인빙자간음죄가 다수의 남성과 성관계를 맺는 여성 일체를 ‘음행의 상습 있는 부녀’로 낙인찍어 보호의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보호대상을 ‘음행의 상습없는 부녀’로 한정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고전적 정조관념에 기초한 가부장적·도덕주의적 성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셈이 되고 만다. 이는 결국 이 사건 법률조항의 보호법익이 여성의 주체적 기본권으로서 성적자기결정권에 있다기 보다는 현재 또는 장래의 경건하고 정숙한 혼인생활이라는 여성에 대한 남성우월적 정조관념에 입각 한 것임을 보여준다. 이 점에 관해서는 여성인권의 책임을 지고 있는 여성부에서조차 이 사건 법률조항이 여성을 비하한다는 이유로 그 위헌성을 인정하고 있다.
결국 이 사건 법률조항은 남녀평등의 사회를 지향하고 실현해야 할 헌법 제36조의 제1항의 국가의 헌법적 의무에 반하는 것이자, 여성을 유아시함으로써 여성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사실상 국가 스스로가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부인하는 것이 되므로, 결국 이 사건 법률조항이 보호하고 자 하는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은 여성의 존엄과 가치에 역행하는 것이다. 형법상의 혼인빙자간음죄 규정은 남성의 성적자기결정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대한 수단 의 적절성, 피해최소성, 법익균형성에도 반하는 과잉제한으로 위헌이다.
가사 이 사건 법률조항에 혼인을 빙자한 남성을 형사처벌함으로써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보호하고자 하는 입법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해 준다고 하더라도, 아래의 점들을 고려하면,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 여 혼인빙자간음행위를 형사처벌하는 것은 수단의 적절성과 피해최소성을 갖추지 못하였다.
개인의 성행위와 같은 사생활의 내밀영역에 속하는 부분에 대하여는 그 권리와 자유의 성질상 국가는 간 섭과 규제를 가능하면 최대한으로 자제하여 개인의 자기결정권에 맡겨야 하며, 다른 생활영역과는 달리 사생활, 특히 성적 사생활 영역에서 형법적 보호의 필요성과 형벌의 필요성을 판단함에 있어서는 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 것이다. 최근의 우리 사회는 급속한 개인주의적· 성개방적 인 사고의 확산에 따라 성과 사랑은 법으로 통제할 사항이 아닌 사적인 문제라는 인식이 커져가고 있으며, 전통적 성도덕의 유지라는 사회적 법익 못지않게 성적자기결정권의 자유로운 행사라는 개인적 법익이 더 한층 중요시되는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이처럼 결혼과 성에 관한 국민의 법의식에 많은 변화가 생겨나 여성의 착오에 의한 혼전 성관계를 형사 법률이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할 필요성은 이미 미미해졌고, 혼전 성행위를 유발하는 빙자의 방법과 관련하여 혼인빙자에 의한 간음으로부터만 여성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은 더 이상 국가의 과제가 아니다. 성인 부녀자의 성적인 의사결정에 폭행·협박·위력의 강압적 요인이 개입하는 등 사회적 해악을 초래할 때에만 가해자를 강간죄 또는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죄 등으로 처벌받게 하면 족할 것이다. 성인이 어떤 종류의 성행위와 사랑을 하건, 그것은 원칙적으로 개인의 자유 영역에 속하고, 다만 그것이 외부에 표 출되어 명백히 사회에 해악을 끼칠 때에만 법률이 이를 규제하면 충분하다. 개개인의 행위가 비록 도덕률에 반하더라도 본질적으로 개인의 사생활에 속하고 사회유해성이 없거나 법익에 대한 명백 한 침해가 없는 경우에는 국가권력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사생활에 대한 비범죄화 경향이 현대 형법의 추세이다. 세계적으로도 혼인빙자간음죄를 폐지해 가는 추세이며 일본, 독일, 프랑스 등에도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한 처벌규정이 없다. 과거에 비하여 혼인빙자간음행위가 적발되고 또 처벌까지 되는 비율이 매우 낮아졌고, 고소 이후에도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고소취소되어 공소권없음 또는 공소기각으로 종결되는 사건이 상당 수에 이름으로써 혼인빙자간음죄는 행위규제규범으로서의 기능을 잃어가고 국가 형벌로서의 처단기 능이 약화되었다. 아울러 여성의 사회적·경제적 활동이 활발하여짐에 따라 여성의 생활능력과 경제 적 능력이 향상됨으로써 여성이 사회적·경제적 약자라는 전제가 모든 남녀관계에 적용되지는 않게 되었고, 여성도 혼인과 상관없이 성적자기결정을 하는 분위기가 널리 확산되었다. 그럼에도 국가가 나서서 그 상대방인 남자만을 처벌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아직도 여성을 사회적 약자로 보아 여성을 비하하는 것이 된다. 혼인빙자간음죄는 친고죄로서 자기결정에 의하여 자기책임 하에서 스스로 정조를 포기한 여성의 고소취소 여부에 따라 검사의 소추 여부 및 법원의 공소기각 여부가 결정된 다. 따라서 이 사건 법률조항이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 보호라는 목적과는 달리 혼인빙자간음 고소 및 그 취소가 남성을 협박하거나 그로부터 위자료를 받아내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폐해도 종종 발생한다. 이는 국가의 공형벌권이 정당하게 행사되고 있다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이 사건 법률조항은 개인의 내밀한 성생활의 영역을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남성의 성 적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라는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인 반면, 이로 인하여 추구되는 공익은 오늘날 보호의 실효성이 현격히 저하된 음행의 상습없는 부녀들만의 ‘성행위 동기의 착오의 보호’로서 그것이 침해되는 기본권보다 중대하다고는 볼 수 없으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은 법익의 균형성도 상실하였다.